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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로 테무 새벽배송이 온 도시를 흔들던 밤 택배 현장에 있는 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새벽배송 논란, 그리고 그 속에서 뒤늦게 깨어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테무 #새벽배송논란 #택배기사이야기 #플랫폼전쟁 “알람 안 맞춰도 돼. 테무에서 시키면 새벽에 온다던데?” 어느 겨울 저녁, 서울 변두리의 작은 빌라 거실에서 지연은 농담처럼 말하고 곧바로 스마트폰 화면을 넘겼다. 화면 안에는 형형색색의 상품 썸네일과 믿기 힘든 가격, 그리고 눈에 확 들어오는 한 줄이 있었다. 오늘 23시 59분 이전 주문 시, 내일 새벽 도착. 옆에서 라면을 먹던 남편 민수는 젓가락을 멈추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몇 년째 플랫폼 개발자로 일하다가 최근 구조조정에 휘말려 계약직으로 전환된 그는, 숫자와 구조에는 빠삭했지만 변화의 속도에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새벽배송? 저 가격에? 저 배송비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물류 네트워크와 인건비, 창고 운영 비용이 떠오르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와, 진짜 싸다. 근데… 저걸 누가 배송하지?” 그 시각, 도심 외곽의 물류센터에서 준호는 바코드 스캐너를 쥔 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손등을 타고 흐르는 땀은 차가웠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동네 마트의 배송 기사였다. 점장은 친근했고, 단골 손님들의 안부를 물으며 일하는 맛이 있었다. 하지만 대형 플랫폼과 가격 경쟁에서 밀린 동네 마트는 문을 닫았고, 그는 더 큰 물류회사로 옮겼다가, 다시 최근 들어 외국계 플랫폼과 계약한 배송 대행 업체로 옮겨왔다. “오늘 테무 물량 또 늘었대.” 동료 기사가 툭 던진 말에 준호는 고개를 돌렸다. 파란색, 주황색, 초록색, 그리고 이제는 생소...

폭설 속에서 떠난 네 식구의 겨울 캠핑

폭설 속 가족 캠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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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속에서 떠난 네 식구의 겨울 캠핑

딸 둘과 엄마, 아빠. 평범한 네 식구가 예기치 못한 한파와 폭설 속에서 보내게 된 단 하루의 캠핑. 위험과 두려움, 그리고 서로를 향한 믿음이 뒤섞인 눈보라 속에서 이 가족은 잊지 못할 추억과 따뜻한 온기를 찾아간다.

등장인물: 아빠, 엄마, 11살 첫째 유나, 15개월 막내 은유 배경: 한겨울 산속 캠핑장, 갑작스러운 폭설
#가족 #폭설 #겨울캠핑 #성장
겨울 눈 속 캠핑 장면을 연상시키는 랜덤 이미지

토요일 아침, 창밖은 세상이 온통 희게 물든 것처럼 조용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얇은 커튼 너머로 퍼지는 회색빛 하늘 아래, 지붕 위와 나무 가지마다 눈이 포슬포슬 쌓여 갔다. 거실 한가운데, 11살 유나는 배낭을 열어 장갑과 목도리, 작은 수첩과 펜을 차례대로 넣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장갑 두 개, 목도리 하나, 수첩이랑 펜… 아, 책도 한 권 가져갈까? 눈 오는 날 텐트 안에서 책 읽으면 진짜 좋겠다.”

부엌에서는 엄마가 15개월 된 막내 은유의 이유식을 작은 용기에 나눠 담고 있었다. 아직 서툰 손놀림으로 보온병에 물을 채워 넣으며, 엄마는 창밖을 흘깃 바라보았다. 눈발은 아침부터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여보, 이대로 캠핑 가는 거 정말 괜찮겠어?” 엄마는 식탁에 앉아 캠핑장 예약 내역을 다시 확인하던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노트북을 덮으며 웃음을 지었다.

“도로 상황만 조심하면 괜찮을 거야. 게다가 우리 이번 주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유나도 엄청 기대하고 있잖아. 물론, 너무 위험해 보이면 중간에라도 돌아올 거고.”

엄마는 은유를 안아 올리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몸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자 걱정이 더 밀려왔다.

“그러니까 더 걱정이지. 이 조그만 애를 데리고 눈길을 간다는 게…”

그때, 유나가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다가왔다.

“엄마, 나 체육 시간에도 눈 오는 날 운동장 뛰어다녀 봤어. 그냥 조금 미끄러운 것뿐이야. 그리고 우리 차에 겨울 타이어도 있잖아. 아빠 운전 잘해서 괜찮을 거야!”

아빠는 장난스럽게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들었지? 우리 집 공식 안전운전 담당입니다. 게다가 난방 장비도 다 챙겼고, 비상용 담요도 있고, 랜턴이랑 배터리도 넉넉해. 혹시라도 뭐가 생겨도 대비는 충분해.”

엄마는 그런 아빠와 딸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대신 내 말 잘 듣기.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느껴지면 바로 돌아오기.”

아빠는 엄지를 치켜세웠고, 유나는 “예!” 하고 대답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게, 폭설을 예고하는 겨울 하늘 아래, 네 식구의 캠핑 준비는 서서히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차 트렁크에는 접이식 의자와 조리도구, 작은 가스버너, 침낭 네 개, 그리고 아직 새 것 티가 나는 하늘색 패밀리 텐트가 가지런히 실려 있었다. 아빠는 마지막으로 구급상자를 넣은 뒤 트렁크를 닫으며 말했다.

“다들 준비됐나요? 겨울 왕국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엄마는 은유를 카시트에 조심히 앉히고 두꺼운 담요로 감싸 주었다. 은유는 둔탁한 눈송이가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갑자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유나는 이어폰 대신 귀마개를 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음악 안 들을 거야. 밖에 눈 떨어지는 거 구경해야 돼.”

그러면서 휴대폰 카메라를 켜서 차창 너머로 찍기 시작했다.

시동이 걸리고, 차는 천천히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도로에는 이미 하얀 눈이 얇게 깔려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었다. 신호 대기 중, 유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릴 때 겨울 캠핑 가본 적 있어?” “글쎄… 난 겨울 캠핑은커녕, 겨울엔 밖에 나가기도 싫어했어. 손가락이 다 시려서.”

“그럼 오늘이 엄마 첫 겨울 캠핑이구나? 나랑 같이 ‘첫 캠핑 친구’ 하는 거다.”

유나는 장난스럽게 엄마의 팔을 툭 치며 웃었다.

차가 도심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수록 눈발은 점점 거세졌다. 앞차의 붉은 브레이크 등이 희뿌연 안개처럼 보이는 눈 속에서 점점 희미해졌다가, 가까워질 때마다 또렷해지기를 반복했다.

폭설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풍경을 바꿔 놓고 있었다. 익숙한 도로와 나무들, 표지판까지도 서서히 흰 그림자 속으로 감춰지는 듯했다.

아빠는 핸들을 단단히 잡으며 속도를 조금 더 줄였다.

“조금만 더 가면 고속도로 빠져나와. 거기서부터는 캠핑장까지 30분 남짓이야.”

엄마는 내비게이션 화면과 바깥 풍경을 번갈아 확인하다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조심해. 눈발이 아까보다 훨씬 굵어졌어.”

그 말을 듣는 듯, 갑자기 굵은 눈송이들이 와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이퍼는 쉴 새 없이 앞유리를 훑었지만, 몇 초 사이에 시야는 금세 흐릿해졌다. 유나는 조용히 숨을 삼켰고, 은유는 그런 것도 모른 채 입에 손가락을 물고 있었다.

차 안 공기가 잠시 무거워졌다. 아빠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아주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괜찮아. 여기서 더 속도 줄이면 돼. 빙판만 아니면 문제 없을 거야.”

유나는 아빠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굳어진 턱선과 좁게 모아진 눈썹을 보자,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안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습이 묘하게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참을 그렇게 느리게 달렸을까. 좁은 산길 옆으로 캠핑장 입구를 알리는 작은 간판이 눈 속에서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간판 위에는 이미 눈이 소복이 쌓여 글자가 반쯤 가려져 있었다.

“여기다!”

아빠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방향지시등을 켜고 진입로로 차를 돌렸다.

캠핑장 안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예약된 사이트마다 마련된 나무 데크 위에는 아무도 오지 않은 듯 새하얀 눈만이 덮여 있었다. 다른 차는 두 대뿐이었고, 그마저도 문을 굳게 닫은 채 인기척이 없었다.

차에서 내리자, 서늘한 공기와 함께 눈발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우와…” 유나는 숨을 내쉬며 감탄했다. 입김이 허공에 하얗게 피어올랐다.

엄마는 두꺼운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목도리를 올려 얼굴 절반을 가렸다. 은유를 품에 꼭 끌어안자, 아이의 작은 손이 엄마의 턱을 더듬다가 패딩 지퍼를 잡아당겼다.

“응, 괜찮아. 조금만 추워도 금방 따뜻하게 해줄게.”

엄마는 은유의 모자를 한 번 더 눌러 씌우며 중얼거렸다.

아빠는 눈이 쌓인 데크 앞을 대충 쓸어 내리고, 텐트 가방을 내려놓았다.

“자, 우리 가족의 오늘 집을 지어볼까요? 유나, 여기 좀 도와줄래?”

“알았어!”

유나는 장갑을 끼고 텐트 폴대를 들었다. 눈 위에서 발이 조금씩 미끄러졌지만, 넘어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균형을 잡았다.

텐트가 점점 형태를 갖추어 갈수록 눈보라도 잠시 약해지는 듯했다. 파란색 천이 바람에 펄럭였다가, 폴대에 단단히 고정될수록 조금씩 안정감을 되찾았다. 텐트 안에는 두 겹으로 된 바닥 매트와 두툼한 침낭들이 차곡차곡 깔렸다.

엄마는 은유를 텐트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작은 매트 위에 내려놓았다. 은유는 새로운 공간이 신기한지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바닥을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 녀석은 어디만 와도 잘 웃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긴장이 조금 풀렸다.

아빠는 텐트 주변 눈을 더 치우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눈이 많이 올 땐 텐트 바로 옆은 수시로 치워줘야 해. 그래야 출입구가 막히지 않고, 눈 무게 때문에 천이 눌리지도 않거든.”

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삽으로 텐트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숨이 차오르자 입에서 더 진한 입김이 터져 나왔다.

텐트 설치를 마친 뒤, 가족은 데크 한쪽에 작은 테이블을 펴고 가스버너 위에 물을 올렸다. 물이 끓자 아빠는 코코아 가루와 우유를 넣어 따뜻한 초코 음료를 만들었다.

“와, 밖에서 마시는 코코아는 진짜 더 맛있는 것 같아.”

유나는 두 손으로 머그컵을 감싸 쥐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표면까지 후후 불어 가며 한 모금 마셨다.

은유는 컵을 마실 수는 없었지만, 코코아 향이 좋은지 꿀꺽꿀꺽 침을 삼키며 입을 달싹거렸다. 엄마는 은유에게 따뜻한 물을 조금 먹이고, 작은 간식을 건네주었다.

오후로 접어들자,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해가 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었지만, 구름이 두껍게 깔리며 빛을 가려 버린 탓이었다. 눈발은 다시 굵어졌고, 바람이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휴대폰으로 기상 예보를 확인하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오늘 밤에 눈이 많이 올 거라는 말은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을까?”

“지금 돌아가도 눈길이긴 마찬가지야. 오히려 어두워지기 전에 여기서 잘 준비를 하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어.”

유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빠, 우리… 위험해?”

아빠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유나의 눈높이에 맞춰 앉았다.

“솔직히 말하면, 눈이 많이 오는 건 맞고, 그래서 조심해야 하는 것도 맞아.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준비는 최대한 다 하고 있어. 그래서 괜찮을 거라고 믿는 거야.”

“준비…?”

“응. 텐트 고정 상태, 눈 치우기, 난방 점검, 비상식량 확인, 그리고 서로 떨어지지 않기. 이런 것들.”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할 일 줄 수 있어? 나도 준비에 도움이 되고 싶어.”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넌 ‘폭설 안전 요원’이야. 텐트 안에 들어올 때마다 은유가 따뜻한지 확인하고, 엄마가 너무 추워하지 않는지도 보고 알려줘. 그리고 혹시 내 얼굴이 너무 심각해 보이면, 웃으라고 놀려줘.”

유나는 킬킬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안전 요원 유나 출동합니다!”

바람은 점점 텐트 천을 때리기 시작했다. 휭, 하고 스치는 소리와 함께 눈송이들이 텐트 벽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 소리는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일정한 리듬을 가지다가도, 갑자기 세차게 몰아치며 텐트를 흔들어 댔다.

은유는 처음 듣는 소리에 놀랐는지 잠시 울먹이더니, 엄마 품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엄마는 아이의 등을 천천히 토닥이며 속삭였다.

“괜찮아, 은유야. 이건 그냥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장난치는 소리야.”

텐트 안의 랜턴이 부드러운 주황빛을 퍼뜨리기 시작하자, 밖의 세계는 더 멀게 느껴졌다. 눈보라와 바람 소리가 텐트 바깥에서 거칠게 소리를 내는 동안, 안에서는 숨소리와 작은 대화만이 조용히 이어졌다.

저녁 식사로 간단한 국과 햇반, 그리고 구운 소시지를 나누어 먹고 나니, 시계는 밤 아홉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웠다. 텐트 출입구를 살짝 열어 보니, 눈이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이 정도면… 내일 아침에 눈 치우는 데만 한참 걸리겠는데.”

아빠의 말에 엄마는 다시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혹시 차까지 나가는 길이 막히는 건 아니겠지?”

“괜찮을 거야. 새벽에 한 번 나가서 길을 확인해 볼게. 아직은 차 옆까지 완전히 막히진 않았어.”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쉽게 놓이지 않았다. 은유는 이미 좁은 침낭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유나는 눈을 반쯤 뜬 채로 랜턴 불빛 아래 그림자를 바라보며 멍하니 누워 있었다.

“유나야, 무섭진 않아?”

엄마가 부드럽게 묻자, 유나는 잠시 망설였다.

“조금…? 아니, 많이는 아닌데, 그냥… 이상해. 밖에서 나는 소리가 집에서 듣는 소리랑 너무 달라서. 바람이 윙윙거리는 것도, 텐트가 덜컹거리는 것도.”

엄마는 유나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사실 엄마도 좀 무서워. 그런데 우리 셋이 같이 있잖아. 아니, 넷이네.”

“아빠까지 넷.”

유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그 순간, 텐트 한쪽에서 갑자기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그곳으로 향했다. 눈이 한꺼번에 텐트 옆으로 밀려와 쌓이면서, 폴대가 잠시 흔들렸던 것이다.

“으악!”

유나는 반사적으로 엄마 품 안으로 파고들었고, 엄마도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아빠는 곧바로 랜턴을 들고 쪼그려 앉았다.

“괜찮아, 괜찮아. 폴대는 멀쩡해. 눈이 많이 붙어서 그래. 나갔다 올게.”

“지금 나간다고?”

엄마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짧게 갔다가 올게. 텐트 옆 눈만 좀 치우고 올게. 안 그러면 더 눌릴 수도 있어서.”

아빠는 두꺼운 패딩과 방수 바지를 다시 챙겨 입고, 고글까지 착용한 뒤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렸다. 출입구를 여는 순간, 바람과 눈이 한꺼번에 텐트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문 꼭 닫을게!”

아빠는 큰 삽을 들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텐트 안은 잠시 숨을 죽인 듯 조용해졌다. 은유의 잔잔한 숨소리와 랜턴의 미세한 전자음만이 귀에 들렸다. 유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엄마, 아빠 혼자 괜찮을까?” “괜찮으려고 나간 거야. 아빠 금방 올 거야.”

그렇지만 엄마의 손끝도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떨림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더 천천히, 부드럽게 유나의 등을 쓸어내렸다.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텐트 밖에서는 삽으로 눈을 치우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가, 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엄마, 왜 소리가 안 나?”

유나의 목소리는 떨릴 만큼 낮았다.

엄마는 대답 대신 출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마음 한켠에서 안 좋은 상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혹시 발이 미끄러졌나? 눈더미에 묻힌 건 아닐까?

그때였다. 출입구 아래쪽 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랜턴을 들고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떨리는 빛이었다.

“온다…”

유나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조심스럽게 지퍼가 내려가고, 온몸에 눈을 뒤집어쓴 아빠가 얼굴을 내밀었다. 패딩 위와 모자, 눈썹까지 하얀 눈이 뭉텅뭉텅 붙어 있었다.

“푸하… 이건 거의 눈사람이네.”

아빠는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유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웃음과 함께 눈물을 터뜨렸다.

“아빠 바보… 왜 이제 와…”

엄마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빠의 패딩을 털어 주었다.

“괜찮아? 어디 안 미끄러졌어?”

“응, 괜찮아. 눈이 생각보다 많이 쌓여서 치우느라 좀 걸렸어. 대신 이제는 텐트 옆이 훨씬 가벼워졌어.”

아빠는 장갑을 벗고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이제 밖에 나가는 건 내 몫이니까, 너희는 절대 텐트 밖으로 나가지 마. 약속.”

유나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약속… 대신 내 옆에 꼭 있어야 돼.”

아빠는 유나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래, 아빠 여기 있지. 우리 네 명, 한 명도 빠짐없이 같이 있을 거야.”

밤은 길고도 느리게 흘러갔다. 밖의 눈보라는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바람은 때로는 멈춘 듯 고요해졌다가, 다시 세차게 텐트를 휘감았다.

네 식구는 서로 가까이 붙어 앉아 작은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 이번에는 이어 말하기 게임. 내가 ‘눈’ 하면, 유나는?”

“눈사람!” “그럼 엄마는?” “눈사람 목도리.” “아빠는… 눈사람 목도리 위에 얹힌 마시멜로.”

엉뚱한 말들이 이어지자, 텐트 안에는 웃음이 번졌다. 은유는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지만, 웃음소리만으로도 즐거운지 킥킥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조금 지루해질 때쯤, 유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빠, 우리 여기 못 돌아가게 되면 어떡해?”

아빠는 잠시 멈칫했다가 솔직하게 답했다.

“사실,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혹시라도 내일 아침에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바로 못 내려가면, 캠핑장 관리실에 도움을 요청하면 돼. 제설차나 구조팀이 도와줄 수도 있고.”

“그럼 진짜 구조되는 거야?” “응. 세상에는 눈 속을 잘 아는 어른들이 많거든.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길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말이야.”

유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상상했다. 거대한 제설차가 눈더미를 밀어내며 길을 내고, 그 끝에서 자기네 가족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그 상상 속에서, 자신도 언젠가 누군가의 길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스쳤다.

“눈이 많이 온다고 해서, 길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다만, 길을 찾는 방법이 조금 더 복잡해질 뿐이지.”

아빠의 말은 눈보라 속에서도 희미하게 반짝이는 등불처럼 유나의 마음에 남았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웃고, 또 조용히 멍하니 눈보라 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유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에 빠져들었다.

엄마는 두 딸의 숨소리를 번갈아 들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 우리 조금 용감했던 것 같지?”

아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금 무모하기도 했지만… 서로를 더 잘 알게 된 하루 같아.”

눈꺼풀 사이로 밝은 빛이 스며들며 유나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텐트 안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천 너머로 들어오는 빛은 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바람 소리도 많이 잦아들어 있었다.

“엄마… 아침이야?”

중얼거리듯 묻자, 엄마가 부드럽게 웃었다.

“응, 아침이야. 밖이… 아주 난리가 났더라.”

“난리?”

유나는 벌떡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아빠가 조심스럽게 지퍼를 열자, 눈부신 흰빛이 한꺼번에 텐트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텐트 밖 풍경은 마치 다른 세계 같았다. 데크와 주변 나무, 캠핑장 도로까지 모든 것이 깊은 눈 속에 잠겨 있었다. 나무 가지들은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고, 숨겨져 있던 작은 바위와 울타리도 모두 흰색 천으로 덮인 것처럼 보였다.

“우와…”

유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눈 위에 발을 내디뎠다. 자기 무릎 가까이까지 푹 빠져들자, “으악!” 하고 웃음 섞인 비명을 질렀다.

아빠는 이미 장화를 신고 길을 조금씩 내고 있었다.

“일단 차까지 가는 길부터 만들자. 관리실도 들러서 상황을 물어보고.”

엄마는 은유를 안고 텐트 입구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기 은유는 눈부신 풍경이 신기한지, “우아아”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손을 내저었다.

관리실에서는 이미 아침 일찍부터 눈 치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직원은 아빠에게 웃으며 말했다.

“밤새 고생 많으셨겠어요. 다행히 도로 쪽에도 제설차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어요. 아마 오후쯤이면 내려가는 차들도 나올 거예요.”

아빠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빨리 해결되네요. 저희도 차까지 길을 만들어 놓고 천천히 준비해야겠어요.”

제설차가 도로를 지나가는 동안, 캠핑장 안에서는 작은 일상이 이어졌다. 유나는 눈 위에 천천히 누워 별 모양을 그리듯 팔다리를 흔들어 보았다. 눈이 옷 속으로 조금 스며들었지만, 그마저도 웃음으로 덮을 수 있는 정도였다.

“엄마, 봐! 나 눈 천사 만들었어!”

유나는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엄마는 그 모습을 휴대폰에 담으며 말했다.

“어제 밤에는 그렇게 무섭다고 하더니, 이제는 눈 천사가 다 됐네.”

“무서웠지. 근데… 무서운 거랑 재밌는 건 같이 있을 수도 있구나 싶었어. 어제 무서운 소리 들으면서도, 우리 네 명 같이 있어서 재밌었던 것도 있잖아.”

엄마는 잠시 말을 잃고 유나를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많이 자랐을까. 아직은 작은 손이지만, 그 손 안에는 두려움도, 용기도 함께 쥐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빠는 텐트 주변을 정리하며 소리쳤다.

“자, 오늘의 마지막 임무!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를 최대한 깨끗하게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눈 위에도 흔적이 남겠지만, 쓰레기는 절대 남기지 않는 거, 알지?”

유나는 장갑을 끼고 발치 주변을 살펴보았다. 작은 과자 부스러기와 비닐 조각까지 하나하나 주워 모았다. 은유는 그런 언니를 바라보며 옹알이를 해대다, 어느 순간 자신의 장갑 낀 손을 눈 위에 쿡 찍으며 웃었다.

텐트가 다시 가방 속으로 들어가고, 데크 위에 남은 것은 발자국뿐이 되었다. 눈은 곧 그 발자국마저 덮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네 식구의 마음에 남은 기억은 눈이 아무리 내려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이 날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폭설과 위험을 먼저 말할까, 아니면 서로의 손을 더 꼭 잡게 해 준 하얀 밤의 온기를 먼저 떠올릴까.

오후가 되자, 도로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제설차가 지나간 길을 따라 차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빠는 관리실에서 마지막으로 상황을 확인한 뒤, 가족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도 집으로 가자. 오늘은 충분히 모험했으니까.”

유나는 차창 밖으로 계속 눈을 바라보았다. 어제 올라올 때는 무섭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산길이, 오늘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길 옆으로 쌓인 눈더미들 사이로, 자신이 어젯밤 두려움을 버티며 지켜낸 시간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아빠.” “응?” “우리… 다음에 또 겨울에 캠핑 올 수 있을까?”

엄마가 깜짝 놀라 유나를 바라보았다.

“어제 그렇게 무섭다고 해놓고, 또 오고 싶어?”

유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이번엔 덜 무서울 수도 있잖아. 어제 밤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한 번 겪어봤으니까. 그리고… 은유가 좀 더 크면, 눈사람도 같이 만들 수 있잖아.”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좋지. 다음엔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 날씨도 더 잘 살펴보고, 그때 다시 도전해 보자.”

엄마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뭐… 오늘처럼만 네 명이 딱 붙어 있으면, 조금 무서워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은유는 카시트에서 졸고 있다가, 차가 도심 쪽으로 내려오는 흔들림에 맞춰 살짝 눈을 떴다. 그리고 유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방긋 웃었다.

그 웃음을 바라보며 유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네가 조금 더 크면, 오늘 이야기 꼭 해줄게. 우리가 폭설 속에서 같이 있었던 밤을.’

차는 점점 익숙한 건물들과 신호등 사이로 들어왔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도시의 도로 위에서는 소금과 모래가 섞여 차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자, 네 식구는 동시에 큰 숨을 내쉬었다. 긴 여행을 마친 사람들처럼, 혹은 긴 꿈에서 깨어난 사람들처럼.

집으로 올라와 두꺼운 옷을 벗고 따뜻한 샤워를 마친 뒤, 네 식구는 거실에 둥글게 앉아 간단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지나갈 때마다, 몸속 깊은 곳까지 온기가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를 한 마디로 말하면?”

아빠가 물었다.

유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무서웠는데, 재밌었어.”

엄마는 웃으며 덧붙였다.

“걱정됐는데, 고마웠어.”

아빠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위험했는데, 잊고 싶지 않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은유는, 그저 배부른 얼굴로 꾸벅꾸벅 졸며, 작은 손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날 밤, 유나는 자기 방 책상 위에 있는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글자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폭설 속 캠핑. 나는 무서웠다. 하지만 아빠, 엄마, 은유랑 같이 있어서 괜찮았다. 눈보라는 크고 무서웠지만, 우리 텐트 안은 작고 따뜻했다. 다음에 또 겨울 캠핑을 가게 되면, 오늘보다 조금 덜 무서울 것 같다. 왜냐하면,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걸, 오늘 밤에 배웠으니까.”

펜을 내려놓고 수첩을 덮은 유나는 천천히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창밖에서는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 소리는 전날 밤처럼 무섭게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가족이 폭설 속에서 떠났던 겨울 캠핑은, 위험한 모험의 기억이자, 서로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 하룻밤의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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