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지키는 남자와 땅속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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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깊은 산자락 아래에는 정만이라는 농부가 살았다. 그의 삶은 대단치 않았다. 작고 낡은 농가 한 채, 그리고 대대로 이어받아 온 감자밭 하나. 하지만 정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감자밭을 사랑했다.
감자는 그의 삶이고, 그의 희망이며,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자부심이었다.
그해 봄은 유난히도 풍년의 기운이 가득했다. 햇빛은 따사롭고, 비는 적당히 내렸으며, 바람은 감자잎을 스치는 방향까지 완벽해 보였다. 정만은 날마다 감자싹이 쑥쑥 올라오는 것을 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는 꼭 서울 큰 시장에도 내다 팔리리라, 더 넓은 밭도 살 수 있겠지, 내년에는 더 많은 감자를 심을 수 있겠지, 그는 장밋빛 미래를 머릿속에 그리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밭 한구석에서 이상한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감자 줄기 몇 개가 쓰러져 있고, 땅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처음엔 신경 쓰지 않았다.
두더쥐쯤이야 농부가 상대하기에 쉬운 상대였다.
덫을 놓고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다음 날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감자밭이 마치 트랙터로 갈아엎은 것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고, 감자 수십 개가 spongy하게 씹혀 사라져 있었다.
정만은 놀라서 주저앉았다.
이건 결코 작은 짐승이 저지를 일이 아니었다. 그는 덫을 더 세게 고정해 설치하고 밤새 마음을 졸였다. 다음 날, 덫은 모든 모양을 잃고 부서져 있었다.
쇠로 된 부분이 마치 힘센 손에게 비틀린 듯 구부러져 있었다. 정만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급히 이장님을 찾아갔다. 자신이 본 피해를 설명하자, 이장님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언가 오래된 두려움이 그의 눈에 스쳤다. 이장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마… 아직도 살아있단 말인가… 거대 두더쥐라네.”
그 말에 정만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장님, 거대 두더쥐라니요. 동화 속 이야기 아닙니까?”
하지만 이장님은 단호했다.
“이 마을에 감자 농사를 망하게 한 저주 같은 괴물이 있었어. 너무 커서 땅속이 무너질 정도였지. 감자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커지고 강해지고, 그래서 감자 농사는 모두 포기했었어. 그 괴물이 사라진 지 20년이 넘었는데…”
정만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자신의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달빛이 감자밭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을 때, 땅이 울렸다.
쿵… 쿵… 땅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 갑자기 흙이 솟아오르며 검고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두더쥐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엎드려 있는 것만큼 큰 몸집에 눈은 새빨갛게 빛났다.
숨소리만으로도 땅이 떨리는 듯했다. 괴물은 감자를 향해 돌진했다. 감자 줄기를 마치 실오라기처럼 뜯어먹으며 엄청난 속도로 파괴해나갔다.
정만은 손에 들고 있던 손전등을 떨어뜨릴 정도로 놀라 뒷걸음질쳤다.
거대 두더쥐는 잠시 감자를 먹다 고개를 돌려 정만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끼이이이이익— 귀청이 찢어질 듯한 괴성을 지르더니, 다시 땅을 파고 사라져버렸다. 정만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가슴을 움켜쥐었다. 두려움과 함께 분노가 찾아왔다.
“내 감자를…!”
다음 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정만의 밭을 보고 경악했다. 누구도 거대 두더쥐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감자 농사는 포기해. 이젠 끝난 거야.”
“그 괴물 건드리면 마을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하지만 정만은 고개를 저었다.
“전 포기 안 합니다. 제 감자는 제 전부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혀를 차며 돌아갔다. 정만은 혼자가 되었다.
그날부터 정만은 밤마다 감자밭을 지키기 시작했다. 강한 불빛, 튼튼한 울타리, 낫과 막대기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거대 두더쥐는 인간의 대비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울타리를 맨손처럼 찢어버렸고, 덫은 손에 잡히면 깡통처럼 찌그러졌다. 정만이 막대기를 휘둘러도 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괴물의 꼬리에 휩쓸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감자는 점점 사라져갔다. 정만은 절망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정만을 지켜보고 있던 한 노인이 다가왔다. 모두가 기피하던 외딴집 노인이었다.
그는 낮엔 좀처럼 사람들 앞에 나오지 않는데, 어둠 속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노인은 낮게 말했다.
“그 괴물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네. 인간이 만들어낸 저주지. 과거 이 마을에 탐욕을 품은 사람이 감자를 끝없이 불리기 위해 어둠의 약을 사용했다네. 그 결과 감자를 지키던 두더쥐가 괴물로 변했고, 감자밭을 먹어치우는 형벌을 받게 된 거지.”
정만은 믿기 어려웠지만, 그는 어떤 방법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습니까?”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감자에서 태어난 괴물은 감자가 사라지면 힘을 잃는다. 감자를 한 알도 남김없이 치우고, 땅속까지 캐서 없애거라.”
정만은 망설였다. 감자를 치우는 건 곧 생계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올해 수확은 이미 대부분 망가졌다. 그는 결심했다.
정만은 밭에 남은 감자를 모두 파내기 시작했다. 깊게 파고뭉친 뿌리까지, 손이 갈라지고 피가 나올 정도로 캐냈다. 감자를 집 옆 창고 깊은 곳에 숨겼다. 밭은 텅 빈 흙만 남았다. 괴물은 감자를 찾지 못하면 분명 잔뜩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승부였다.
며칠 후 밤, 거대 두더쥐는 굶주림에 미친 듯 나타났다.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땅을 뒤집었다. 감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괴물은 더욱 흉포하게 변했다.
울부짖으며 정만을 향해 돌진했다. 정만은 두려워 떨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괴물은 흙 속을 헤집으며 발악했다. 하지만 감자가 없으니 점점 움직임이 느려지고, 힘도 약해져갔다. 몸집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정만은 손에 든 삽을 꽉 잡고 괴물을 향해 뛰었다. 삽 끝이 괴물의 머리 위를 내리쳤다. 괴물은 잠시 버티더니 다시 몸을 움찔했다.
또 한 번, 다시 한 번. 마침내 괴물은 흙 위에 쓰러졌다. 비명처럼 마지막 끼이이이익— 소리를 내고는 모래성처럼 부서져 흙으로 돌아가버렸다. 땅은 고요해졌다.
정만은 무릎을 꿇고 헐떡였다. 너무나 긴 싸움이었다. 이틀은 꼬박 갈 것만 같은 싸움이었지만, 결국 해냈다. 그는 감자밭을 지켜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흘렀다.
혼자였고, 너무나 버거웠으며, 감자를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앗아갔다. 생계를 잃은 빈 밭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정만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된다. 흙은 날 배신하지 않아.”
다음 해 봄, 정만은 새 감자 씨를 뿌렸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감자를 심다니 미쳤다고 했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
“감자는 내 삶이니까요.”
누구도 더는 거대 두더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괴물은 전설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감자 싹은 다시 돋아났다. 햇빛을 머금고, 바람과 함께 자라며, 정만의 손길 속에서 다시 꿈처럼 자라났다.
시간이 흘러 가을이 왔다. 감자 수확은 풍성했고, 정만은 마을 잔치에서 제일 큰 박수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의 감자가 다시 세상에 돌아온 것을 축하했다.
정만은 감자를 팔아 다시 농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밤하늘을 보며 그는 속삭였다.
“그래, 올해는 감자가 나를 지켰지.”
정만은 더 이상 두더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너졌던 감자밭 위에, 다시 꿈을 심기 시작했다. 인내와 사랑, 흙과 땀 위에 쌓인 그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감자와 함께 자랄 것이었다.
밭 위에는 바람이 불고, 감자는 조용히 흙 속에서 자랐다. 그 누구도 감자밭을 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밭에는 감자를 지켜낸 농부의 용기와 의지가 깊이 스며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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