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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로 테무 새벽배송이 온 도시를 흔들던 밤 택배 현장에 있는 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새벽배송 논란, 그리고 그 속에서 뒤늦게 깨어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테무 #새벽배송논란 #택배기사이야기 #플랫폼전쟁 “알람 안 맞춰도 돼. 테무에서 시키면 새벽에 온다던데?” 어느 겨울 저녁, 서울 변두리의 작은 빌라 거실에서 지연은 농담처럼 말하고 곧바로 스마트폰 화면을 넘겼다. 화면 안에는 형형색색의 상품 썸네일과 믿기 힘든 가격, 그리고 눈에 확 들어오는 한 줄이 있었다. 오늘 23시 59분 이전 주문 시, 내일 새벽 도착. 옆에서 라면을 먹던 남편 민수는 젓가락을 멈추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몇 년째 플랫폼 개발자로 일하다가 최근 구조조정에 휘말려 계약직으로 전환된 그는, 숫자와 구조에는 빠삭했지만 변화의 속도에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새벽배송? 저 가격에? 저 배송비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물류 네트워크와 인건비, 창고 운영 비용이 떠오르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와, 진짜 싸다. 근데… 저걸 누가 배송하지?” 그 시각, 도심 외곽의 물류센터에서 준호는 바코드 스캐너를 쥔 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손등을 타고 흐르는 땀은 차가웠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동네 마트의 배송 기사였다. 점장은 친근했고, 단골 손님들의 안부를 물으며 일하는 맛이 있었다. 하지만 대형 플랫폼과 가격 경쟁에서 밀린 동네 마트는 문을 닫았고, 그는 더 큰 물류회사로 옮겼다가, 다시 최근 들어 외국계 플랫폼과 계약한 배송 대행 업체로 옮겨왔다. “오늘 테무 물량 또 늘었대.” 동료 기사가 툭 던진 말에 준호는 고개를 돌렸다. 파란색, 주황색, 초록색, 그리고 이제는 생소...

코인으로 전부를 잃고, 시골에서 다시 시작하다

코인으로 전재산을 날린 청년의 시골 전원생활 리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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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으로 전부를 잃고, 시골에서 다시 시작하다

3년 동안 노가다판에서 모은 돈을 단 며칠 만에 코인으로 날려버린 청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느낀 날, 그는 짐을 싸서 시골로 내려가 버렸다. 이 이야기는 좌절 끝에서 전원생활로 삶을 갈아엎은 한 사람의 느리고 단단한 리셋 기록이다.

전원생활
코인폭락
리셋
청년귀촌
시점: 2020년 여름 ~ 2024년 봄 배경: 수도권 공사현장 & 작은 시골 마을
돈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무엇이 진짜 내 것이었고, 무엇이 남의 꿈에 올라탄 허상이었는지.
해질 무렵 들판을 걷는 한 사람의 뒷모습
도시의 소음을 떠나, 저녁 햇살이 내려앉은 들판 한가운데에 서게 되기까지.

첫 번째 알람은 새벽 네 시 반이었다. 핸드폰 화면을 켜자마자 코인 어플부터 확인하던 버릇은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새빨간 차트, 마이너스 수치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그날 새벽, 화면 속 숫자는 이미 내 손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세계의 언어 같았다.

3년 동안 공사 현장에서 모은 돈이었다. 겨울엔 손이 얼어 붙어 장갑 안에서 피가 맺히고, 여름엔 콘크리트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히던 날의 시간들이 숫자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숫자조차 남지 않았다.

이름은 민수, 스물아홉. 사람들은 그를 농담 섞어 "건설판 워킹홀리데이"라고 불렀다. 대학을 중퇴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떠돌다 결국 몸 쓰는 일을 택했고, 남들보다 늦게라도 돈 한 번 제대로 모아보자는 일념으로 3년을 버텼다.

그 3년의 대가가, 어느 날 저녁부터 시작된 폭락장에서 허무하게 사라졌다. 처음엔 '떨어질 수도 있지' 하며 담담한 척했다. 하지만 이틀, 사흘,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도 그래프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내가 공사장 위에서 흘린 땀이, 누군가의 마우스 클릭 몇 번에 그냥 사라질 수 있는 거였구나."

현실감이 없었다. 너무 큰 돈이라 실감이 안 나다가, 월세 날짜가 다가오자 비로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통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남은 금액이 한 달치 월세와 몇 번의 편의점 카드 결제밖에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저녁, 민수는 공사장 컨테이너 숙소 모서리에 앉아 벽에 기대어 있었다. 식판에 남은 김치 몇 조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건 시골에 살고 있는 외삼촌이었다. 가족 단톡방에서 가끔 올라오던 사진 속, 낡은 비닐하우스와 조그만 텃밭, 닭장, 그리고 외삼촌의 주름진 얼굴. 그 사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저렇게는 못 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 풍경이 유일하게 숨이 트이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더 떨어질 것도, 더 잃을 것도 없는 삶. 손에 쥔 게 하나도 없어져버린 지금, 오히려 가장 솔직해진 선택지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다가, 익숙한 사투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 민수 아이가. 웬일이고?"

잠시 침묵.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겨우 짧게, 한 문장이 흘러나왔다.

"삼촌… 나, 잠깐 내려가도 돼요?"

안개가 깔린 시골 마을 풍경
안개 낀 새벽, 기차역 앞에서 시작된 시골살이의 첫 장.

시골역에 내렸을 때 공기는 다른 행성의 것처럼 낯설었다. 매캐한 배기가스 대신 축축한 흙냄새, 새소리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섞인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가방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사실 챙길 것도 별로 없었다. 옷 몇 벌, 낡은 노트북, 그리고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코인 어플이 깔린 핸드폰 하나.

외삼촌은 오래된 트럭을 끌고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엔 여전히 햇볕에 그을린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지만, 눈빛만은 따뜻했다.

"야, 사진으로만 보다가 진짜 보니 늙었다잉. 힘들었지?"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그동안 버티고 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민수는 고개를 푹 떨군 채 웃는 척하면서 대답했다.

"그래도 돈은 좀 모았었는데요… 그게…"

이어지는 말은 끝내 꺼내지 못했다. '날려버렸어요'라는 고백은, 도시보다 훨씬 더 단단해 보이는 이 사람 앞에서 너무 부끄러웠다.

트럭은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달렸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논과 밭은 도시에서 본 어느 그래프보다도 확실한 패턴을 그리고 있었다. 모를 심고, 자라고, 누렇게 익어가는 명확한 흐름.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다.

"돈도 이렇게 자라면 좋을 텐데. 이유도 모른 채 쪼그라들지 말고."

외삼촌 집은 생각보다 더 작았다. 시멘트 벽에 칠이 벗겨진 단층집, 옆으로 난 좁은 골목을 지나면 닭장이 나오고, 그 뒤로는 비닐하우스 세 동과 텃밭이 이어졌다. 서울 원룸에서보다 집은 더 낡았지만, 이상하게도 벽이 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방 하나 비어 있으니 거기 쓰면 된다. 근데 우리 집 놀러 온 줄 알고 오지는 않았겠지?"

외삼촌은 슬쩍 웃으며 물었다. 그 말 속에는 '살러 온 거면 각오를 해라'라는 경고가 섞여 있었다.

민수는 머뭇거리다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코인에 돈을 넣은 것, 폭락장, 그리고 남은 돈이 거의 없다는 사실까지. 이야기가 끝났을 때, 방 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래, 요즘 젊은 것들 다 그런다고 뉴스에서 봤다. 도박 같은 거지 뭐."

꾸짖는 말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외삼촌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땀 흘려 번 돈은 쉽게 잃어버리지 마라. 근데 이미 잃었으니까, 이제 다시 벌어야지."

민수는 그제야 조금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집에서는 '다시'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첫날 새벽, 다섯 시 종소리가 마을 스피커에서 울렸다. 서울에서라면 겨우 잠든 시각이었지만, 시골에서의 하루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외삼촌은 새벽부터 장화를 신고 마당을 오갔다.

"일어나라. 새소리 들으면 일어나야 농사꾼이지."

아직 농사꾼이 되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이미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 민수는 부스스한 머리로 밖으로 나왔다. 공사 현장에서의 아침과는 또 다른 종류의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닭장 문을 열어 닭에게 사료를 주고, 텃밭에 물을 주고, 비닐하우스 안 토마토 줄기에 새로 난 잎을 확인했다. 몸을 쓰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공사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고단함의 방향이었다.

공사장에선 몸이 힘들면 마음도 같이 무너졌는데, 여기선 몸이 지칠수록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삽을 쥘 때마다 '이 시간에 내가 다시 코인을 잡으면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유혹이 떠올랐다. 농사일은 눈앞에 바로 돈이 찍히지 않았다. 씨를 뿌리고, 싹이 나길 기다리고, 자라는 걸 지켜봐야 했다. 숫자가 요동치는 흥분 대신, 느리고 심심한 시간뿐이었다.

시골에서 배운 첫 번째 공식
씨앗 + 시간 + 손길 = 결과 단, 이 공식에는 '단타'라는 말이 끼어들 틈이 없다.
도시에서 몸에 밴 습관
잠깐의 한숨보다 빠른 수익, 기다림보다 신호 알림을 믿게 만드는 화면 속 불빛.

저녁이 되면 민수는 습관처럼 핸드폰을 켰다가, 곧바로 화면을 끄곤 했다. 알림창에 가끔 뜨는 '급등', '급락'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싫었다. 외삼촌은 그런 민수를 곁눈질로 지켜보더니, 어느 날 이런 말을 꺼냈다.

"돈 잃어본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또 잃을 준비하는 사람하고, 다신 안 잃을 준비하는 사람."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정직한 대답이었다. 머리로는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제든 복구할 수 있다는 환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
하루하루 자라는 잎사귀와 줄기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래프 대신 눈앞에 쌓이는 변화.

여름이 깊어질수록 비닐하우스 안 공기는 뜨거워졌다. 땀은 공사장 때보다 더 많이 흘렸지만, 그 땀을 닦는 마음가짐은 달라져 있었다. 이 땀은 누군가의 차트 뒤에 숨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토마토와 고추, 상추의 색깔로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어느 날, 외삼촌은 비닐하우스 한 귀퉁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한 줄은 네가 해봐라. 씨 뿌리고, 흙 덮고, 물 주는 것까지. 잘 되든 말든 책임은 네가 져라."

작은 구역이었지만, 민수에게는 작은 '계좌'를 하나 받은 기분이었다. 다만 이 계좌에는 차트도, 레버리지 버튼도 없었다. 대신 하루도 빠짐없이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봐야 했다.

씨앗을 심던 날, 민수는 손바닥 위의 작은 알갱이들을 한참 바라봤다. 코인을 처음 살 때의 그 묘한 기대감과 비슷했지만, 어딘가 달랐다.

"얘들은 최소한, 내가 잠든 사이 누가 마음대로 빼가진 않겠지."

그렇게 시작된 그의 첫 텃밭 줄기는, 서툴지만 성실한 관리 속에 조금씩 자라났다. 잎이 노랗게 변하면 이유를 찾아보고, 벌레가 생기면 허리를 굽혀 일일이 떼어냈다. '손이 많이 가는구나'라는 투덜거림 속에서, 민수는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다들 귀찮다고 클릭 몇 번으로 돈 벌 수 있다는 말을 믿어버리는 거구나.'

시골 생활이 항상 평화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특히 초겨울이 시작되면서 바람이 매서워지고, 비닐하우스 안 온도를 지키기 위해 새벽에도 일어나야 할 때면, 공사장 야간작업이 오히려 그리워질 정도였다.

어느 날은 비가 며칠씩 쏟아져 밭이 흙탕물로 뒤덮였고, 또 어느 날은 예상치 못한 늦서리로 잎들이 한 번에 얼어버렸다. 그때마다 외삼촌은 한숨을 쉬면서도 묵묵히 다시 흙을 고르고, 다음을 준비했다.

"이 바닥은, 잃는 게 당연하다. 흉년 들 때도 있고, 태풍 불 때도 있고. 근데 다들 계속 하는 이유는, 잃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민수는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이 했던 투자를 떠올렸다. 레버리지를 당기고, 한 번의 손실에 계좌가 증발해버리던 순간들. 거기엔 '다음을 준비하는 법'이 없었다. 그저 더 큰 한 방으로 만회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잃을 수 있다""한 번에 끝날 수 있다"는 말은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른 뜻이었다. 농사꾼의 손실은 계절을 기다리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무모한 투자의 손실은 사람의 마음까지 말려버리곤 했다.

그 겨울, 민수는 처음으로 산골짜기의 눈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도시에서는 눈이 오면 '도로 막히겠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이곳에서는 단지 세상이 조용해지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외삼촌 집 온돌방에 누워, 그는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검색창에 '전원생활', '귀촌', '시골 청년' 같은 단어들을 치다가, 결국 자신의 코인 거래 내역을 다시 열어보았다.

화면 속에는 여전히 잔인한 숫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심장이 쿵 내려앉지 않았다. 대신, 한 줄 한 줄 거래 내역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기서 이만큼으로 멈췄으면, 지금쯤… 아니지. 그때의 나는 절대 멈추지 않았겠지."

인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는 깨달았다. 잃어버린 건 돈만이 아니라, 그 돈을 지키는 방법을 모른 채 달려온 시간들이라는 걸.

조용한 시골 집 안 온돌방
불 꺼진 방, 노트북 화면에 비친 숫자 대신 몸 안 깊숙이 남아 있는 감정들.

이듬해 봄, 민수의 텃밭 줄기는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꽤 소문이 났다.

"서울서 내려왔다더니, 손이 야무지네."

칭찬을 들을 때마다 민수는 쑥스러워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가슴 안쪽 어딘가가 은근히 뜨거워졌다.

마을 장터에 처음으로 직접 키운 상추와 토마토를 내다 놓던 날, 그는 가격표를 적으면서 잠시 멈칫했다. '이걸 얼마에 팔아야 하지?' 코인 그래프를 보며 언제 팔아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시간과는 또 다른 고민이었다.

외삼촌이 다가와 말했다.

"일단 네가 생각하는 만큼 써봐라. 대신, 그 값에 부끄럽지 않게 키웠는지만 생각해라."

그렇게 적어 낸 가격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다지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정도였다. 하지만 민수에게 그 종이 한 장은 그동안의 땀과 시간을 숫자로 옮긴 증명서 같았다.

첫 손님은 바로 옆집에 사는 할머니였다.

"이거 다 네가 키운 거라며. 두 봉다리 줘라."

할머니는 웃으면서도, 돈을 지불하는 손놀림만큼은 분명했다. 그 순간, 민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누군가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믿고 돈을 내어주는 장면이 이렇게까지 크게 느껴질 줄 몰랐다.

"그래, 이게 진짜 거래구나. 서로 얼굴을 보고, 각각의 시간을 나누는 거래."

시간이 흐르면서 민수는 자신만의 작은 루틴을 만들게 되었다.

  • 새벽 다섯 시, 닭장 문 열어주기
  • 해 뜨기 전 텃밭 한 바퀴 돌며 상태 점검하기
  • 아침밥 후 비닐하우스 관리와 마을 어르신들 도와드리기
  • 점심 이후에는 잠깐 낮잠 또는 책 읽기
  • 해질 무렵, 내일 할 일을 대충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마무리

예전에는 하루를 "언제 사고 언제 팔까"라는 질문으로 쪼개 썼다면, 지금은 "내일 뭘 심고, 어디를 다듬을까"라는 질문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을 이장이 민수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귀촌하는 프로그램 같은 거 있던데, 너도 한 번 신청해볼래? 정부에서 지원금도 조금 나오고, 교육도 해준다고 하더라."

그 말은 민수에게 예상치 못한 새로운 좌표를 던져주었다. 코인 어플 대신, 그는 처음으로 '기초영농교육 신청'이라는 글자가 쓰인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했다.

도시에서는 늘 "남들보다 빨리"가 기준이었지만, 시골에서의 민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나아지기"만 목표로 삼기로 했다.

교육을 받으러 군청에 갈 때면, 그는 가끔씩 노트북으로 예전 거래 내역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이제 그 내역은 후회라는 이름의 상처가 아니라, 다음 선택을 위한 '교재'처럼 느껴졌다.

저녁노을이 지는 들판과 한 청년의 실루엣
해가 넘어가는 들판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속도를 찾기 시작했다.

세 번째 해 봄, 민수는 외삼촌과 상의 끝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하나 더 들였다. 이번엔 군청 지원금을 조금 보태어 정식으로 자신 이름으로 된 시설을 등록했다. 장부를 쓰는 손은 아직도 서툴렀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집어넣고 잊어버리는 돈'은 아니었다.

그는 도시에서 알게 된 몇몇 동료들에게 시골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흙 묻은 장화, 막 수확한 채소, 해질 녘 닭장 앞에서 찍은 노을 사진. 그 사진들 아래로 답장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야, 너 요즘 얼굴 좋아 보인다." "나도 힘들면 내려가도 되냐?" "거기 인터넷만 되면, 재택으로 일하면서 같이 살고 싶다."

민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 와서도 할 줄 아는 게 '코인'뿐이면 안 된다. 최소한 물 한 바가지라도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알았다.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처럼 모든 걸 잃은 뒤 이 마을에 내려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그때 그는 외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말해주고 싶었다.

"이미 잃었으면, 이제는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게 먼저라고."

어느 늦여름 저녁, 민수는 혼자 들판에 서서 해가 넘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은 조용했다. 더 이상 '급등', '급락' 같은 자극적인 단어가 알림창을 채우지 않았다. 그 대신 마을 단체 채팅방에서 올라오는 '내일 마을 대청소', '벼 베기 도와줄 사람' 같은 소소한 공지들이 있었다.

잠시 생각난 듯, 그는 코인 어플을 다시 설치했다. 계정에 로그인하자, 여전히 그날의 잔고가 그대로였다. 복구되지도, 더 줄어들지도 않은, 마이너스가 깊게 팬 그래프.

민수는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어플을 삭제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미끄러지며 마지막 확인 버튼을 눌렀을 때, 이상하게도 눈 앞의 노을빛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3년 동안 노가다해서 모은 돈을 날린 건, 분명 바보 같은 짓이었지. 근데 그 바보 같은 짓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네."

도시에서의 3년, 코인 지옥의 몇 달, 그리고 시골에서의 3년. 숫자로만 따지면 손해였을지 모르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얼마를 잃었나'만으로 삶을 계산하지 않게 되었다.

잃어버린 건 돈이었지만, 되찾은 건 시간과 호흡과, 흙을 만지는 손의 감각이었다. 그것이면,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작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리, 인구 83명"

예전 같았으면 이 숫자를 보고 '작다'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 안에는 서로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부르고, 함께 계절을 건너는 사람들이 있었다.

민수는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금 사이에 낀 흙, 미세하게 갈라진 굳은살, 햇볕에 그을린 피부. 이 손으로 앞으로 무엇을 더 만들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적어도, 다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내 전부를 맡기진 않겠다.'

그 다짐은 코인 차트의 화려한 불꽃놀이보다 훨씬 오래갈 것 같았다. 어쩌면 어느 해, 또다시 태풍이 불어와 비닐하우스가 날아가고, 병이 돌아 농작물이 망가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안다. 그럴 때마다 흙을 다시 고르고, 씨를 심고, 다음 계절을 기다리면 된다는 걸.

밤이 깊어지자, 마당에서는 여전히 풀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도시의 밤이 네온사인과 차 소리로 채워진다면, 이곳의 밤은 작은 생명들의 숨소리로 가득했다.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민수는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3년 노가다, 몇 달 코인, 그리고 3년 전원생활. 그중에서 진짜 나를 남긴 시간은 어느 쪽이었을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을 알게 해 준 건, 잃어버린 돈이 아니라 다시 손에 쥔 흙이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렀다. 내일도 새벽 종소리가 울릴 것이고, 닭장 문을 여는 손길은 변함없이 이어질 거였다. 언젠가 이 마을 인구 숫자 옆에 조그맣게 '청년 농부 1명 증가'라는 메모가 붙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그는 그저 오늘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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