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밤바다 해루질, 자격증 없이 시작했다가 좃된 청년 여성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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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밤바다 해루질, 자격증 없이 시작했다가 좃된 청년 여성들의 한여름 밤
“그냥 손전등 들고 바다로 나갔다가… 인생 첫 단속이랑 공포 체험까지 풀코스로 하고 돌아왔다.”
“에이, 그냥 바다에서 조개 좀 줍는 거잖아?”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바다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 여행의 방향은 살짝 비틀리기 시작했다.
밤바다 이미지. 셋은 이 정도 분위기만 상상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습한 공기가 얼굴을 감싸 안았다. 지수는 캐리어를 끌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화면 속에는 반짝이는 바닷물 위에 헤드랜턴을 쓴 사람들, 커다란 조개와 문어를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들이 줄줄이.
“야, 이거 봐. 진짜 미쳤다. 우리도 해루질 하자. 이거 안 하면 제주도 온 거 아닌 거잖아.”
민아는 피곤한 눈으로 화면을 쓱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좋지. 근데 이거 장비 빌려야 한다며? 또 돈이야 돈.”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소영이 입을 열었다.
“우리 펜션 사장님께 물어보면 알려주시지 않을까? 어차피 요즘 다들 해루질 패키지 하잖아.”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세 사람은 짐을 내려놓기도 전에 사장님을 붙잡았다. 사장님은 친절하게 웃으며 해루질 얘기를 꺼내자 표정이 살짝 진지하게 굳었다.
“요즘은 해루질도 자격증 있어야 하고, 포획량 규정도 있고 그래요. 그냥 아무나 들어가면 안 돼요. 관광 해루질 체험은 업체 통해서 하시는 게 안전해요.”
사장님의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눈을 깜빡였다. 지수는 속으로 “자격증까지 필요해?”라며 살짝 당황했다.
“아… 그렇구나… 저희 그냥 밤바다에서 조개 몇 개 줍고 그런 거 생각했는데…”
민아가 얼버무리자,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개 몇 개 줍는 것도 규정 있어요. 보호종도 있고, 물때도 맞춰야 하고, 위험한 포인트도 많아요. 진짜 하시려면 체험으로 가세요. 혼자 하시는 건, 음… 저는 말리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셋의 머릿속에는 동시에 같은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많고, 다 하는데… 우리도 그냥 슬쩍 하면 되지 않을까?”
저녁 무렵, 노을이 지고 사람들 발길이 줄어드는 시간. 셋은 이때부터 슬슬 설레기 시작했다.
첫날 저녁, 셋은 주변 해변을 걸으면서 분위기를 살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카페나 술집으로 흩어지고, 바닷가는 금방 조용해졌다. 모래사장에는 누군가 떠다놓고 간 불법 해루질 흔적처럼 보이는 발자국과 조개 껍데기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봐봐. 다들 했잖아. 이 흔적들 뭐겠냐고.”
지수가 낮게 속삭였다.
“그래도 우리, 자격증 없잖아. 혹시 걸리면 어떡해?”
소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야, 여기 밤에 누가 돌아다녀. 그냥 얕은 데서 잠깐만 하자. 사진만 찍고 바로 나올게. 진짜야.”
지수는 이미 마음속으로 여러 장의 인스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결국 합의점은 이렇게 정해졌다. “조개는 최소로, 사진은 최대한 많이, 시간은 짧게.” 위험하면 바로 나오는 것으로.
달빛과 휴대폰 플래시만 믿고 서 있는 세 사람. 이때까진 다 웃고 있었다.
드디어 둘째 날 밤. 하늘에는 구름이 듬성듬성 지나가고, 달빛은 생각보다 밝았다. 세 사람은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작은 해변으로 향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발밑 모래는 낮보다 훨씬 차가웠다.
“야, 여기 사람 진짜 없네. 우리 바다 통째로 빌린 것 같다.”
민아가 장화를 끌며 웃었다.
손전등을 켜자 얕은 물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번쩍이며 튀었다. 바닥에는 조개, 게, 이름 모를 생물들이 가만히 숨 쉬고 있었다. 물결이 손목을 스치며 왔다 갔다 했다.
“우와… 진짜 이래서 다들 해루질하는구나.”
소영은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을 잊은 듯 눈을 반짝였다.
지수는 이미 허리를 숙인 채 낮게 외쳤다.
“야, 여기 뭔가 있어! 이거 조개야? 꺼내봐도 되는 거야?”
하지만 셋은 정확히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무엇이 보호종인지, 몇 마리까지 허용되는지도 모른 채였다. 그저 인터넷에서 얼핏 본 “많이 잡으면 안 된다”는 말만 기억하고 있었다.
“야, 우리 그냥 진짜 몇 개만 건드리고, 사진이나 찍고 나가자. 괜히 욕심내지 말고.”
약속은 그랬다. 문제는 바다 속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욕심이 자꾸 고개를 든다는 거였다.
손전등 불빛이 물 위에 번질 때, 셋은 이미 현실 감각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셋의 말수는 줄어들고, 대신 숨소리와 물소리만이 귀에 들렸다. 물속에서 손을 더 깊게 집어넣을수록, 작고 단단한 것들이 손끝에 닿았다.
“야, 이거 진짜 커. 나 완전 대박 건진 것 같아.”
지수는 두 손으로 뭔가를 잡고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리 제대로 된 양동이도 없는데 어떡해. 비닐봉지에 넣을 거야?”
민아가 속삭이며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이상한 흥분이 섞여 있었다.
어느새 셋은 처음에 정했던 “몇 개만”이라는 약속을 슬며시 넘어서고 있었다. 조개 껍데기 몇 개를 모으던 것이 어느새 “이왕 나온 김에 좀 더”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쪽 멀리서부터 희미한 불빛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다른 관광객인가 싶었다. 하지만 불빛은 일정한 속도로, 곧은 방향으로, 셋을 향해 오고 있었다.
“야, 저거 뭐야? 사람인가?” 소영의 목소리가 잠깐 떨렸다.
“설마 단속이겠어. 그냥 산책 나왔나 보지.”
지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손은 어느새 비닐봉지를 뒤로 숨기고 있었다.
불빛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를 가르며 날아왔다.
“거기, 손전등 들고 계신 분들! 잠깐만 나와보실게요!”
셋은 서로를 동시에 쳐다봤다. “아… 좃됐다.”
해변가 모래 위로 올라오자, 두 명의 단속 인원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조용한 얼굴이었고, 다른 한 명은 비교적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들고 있는 노트와 손전등, 그리고 뒤로 보이는 차량 실루엣이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해루질 하시는 거죠?”
부드러운 얼굴의 단속 직원이 물었다.
지수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말문이 막힌 끝에 겨우 이런 말을 내뱉었다.
“아… 저희, 그냥… 구경만… 사진만 찍으려고…”
직원은 손전등을 아래로 비추며 셋의 발 아래, 그리고 뒤에 숨기려고 했던 비닐봉지 쪽을 비췄다. 반짝이는 조개 껍데기와, 아직 살아 있는 작은 생물들이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구경치고는 좀 많네요.”
그 말에 셋 모두 고개를 떨궜다. 바닷물에 젖어 무거워진 장화가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다.
민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격증… 없습니다. 그냥 인터넷 보고… 사람들이 많이 하길래…”
직원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그런 분들 많아요. 다들 ‘다 하길래 나도 한 번’ 하다가 이렇게 단속 걸리거든요. 이거 그냥 취미 아니고, 어업이랑도 관련 있고, 생태계 보호 문제도 있어서 규정이 엄격해요.”
설멍한 설명들이 귀를 스쳐 지나갈 때, 셋의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부모님이 알면 뭐라고 할까.”
잠시 뒤, 세 사람은 해변가 옆 작은 공간에 앉아 단속 직원의 설명을 들었다. 어떤 종은 아예 만지면 안 되는 보호종인지, 몇 마리 이상 채취하면 불법인지, 해루질 자격증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이런 단속이 왜 자주 이루어지는지.
“특히 요즘은 SNS 때문에 더 그래요. 사진 예쁘게 나오니까 다들 ‘한 번쯤’ 하러 왔다가, 물때도 모르고, 깊이도 모르고, 밤에 들어갔다가 다치는 경우도 많고…”
직원의 말 사이사이에, 셋은 방금까지 자신들이 했던 행동을 하나씩 되짚어보았다. 제대로 된 장비도 없었고, 물때도 몰랐고, 어느 지점이 위험한지도 몰랐다. 그냥 “예쁘니까, 멋있어 보이니까.” 그게 전부였다.
결국 셋은 관련 규정에 따라 조사를 받고, 필요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당장 현장에서 끝나는 문제도 있었지만,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 자체가 서늘했다.
“여행 와서 좋은 추억 쌓으려고 하신 거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추억 남기면 나중에 생각하실 때 더 찝찝하실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지수는 비로소 현실을 완전히 직면한 기분이 들었다.
단속도, 긴장도 지나가고 난 새벽. 셋은 아무 말 없이 바다만 보고 있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펜션으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에 가까웠다. 셋은 샤워도 대충 한 채, 펜션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바다 쪽을 바라봤다. 밤새 불어온 바람 덕에 하늘은 맑아졌고, 별이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끝에, 민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야… 우리 진짜 좃됐다 그치.”
지수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나 진짜 인생에서 단속이라는 걸 처음 당해봤다.”
소영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푹 숙였다.
“나 부모님한테 뭐라고 말하지… ‘제주도 가서 자격증도 없이 해루질하다가 단속당했어요’ 이럴 수도 없고…”
셋은 동시에 웃음과 한숨이 섞인 이상한 소리를 냈다. 분명 최악의 밤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평생 잊지 못할 하나의 사건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다음 날 아침, 펜션 사장님은 다크서클이 짙어진 셋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 혹시 바다 나갔어요?”
셋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의 얼굴에는 짧은 탄식이 스쳤다.
“그래서 제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요즘 단속 심해요. 다친 사람도 많고, 민원도 많이 들어와서…”
사장님은 차를 한 잔씩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도 살아서 돌아온 게 어디에요. 물 무서운 줄 알았으면 이제부터는 바다는 멀리서 보는 걸로만 해도 돼요.”
지수는 컵을 꼭 쥐며 대답했다.
“네… 이제 진짜, 제대로 된 체험 아니면 안 할 거예요. 아니, 차라리 안 할 수도…”
이번에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 바다. 그래도 바다는 여전히 예뻤다.
여행 마지막 날, 셋은 낮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는 장화도, 장갑도, 손전등도 없었다. 그냥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파도 끝만 살짝 맞고 돌아섰다.
“야, 근데 결국 우리 인생 썰 하나 생긴 거잖아.”
민아가 말하자, 지수와 소영이 동시에 웃었다.
“그렇긴 하지. ‘제주도에서 자격증도 없이 해루질하다가 단속당한 썰’이라니. 제목부터 사람들 클릭하게 생겼네.”
소영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누구 다치지 않은 게 진짜 다행이다. 어제 물 조금만 더 들어왔어도, 우리 정신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거 아냐.”
셋은 서로를 한번씩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회와 안도, 부끄러움과 웃김이 섞인 기묘한 감정이었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다시는 그렇게 준비 없이 바다에 들어가지는 않겠다는 다짐.
몇 달 뒤, 셋은 각자의 도시에서 바쁘게 살다가 오랜만에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자연스럽게 제주도 이야기가 나왔고, 밤해루질 단속 사건은 여전히 대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도 우리 그날 이후로, 뭐 할 때마다 한 번 더 검색해보지 않냐?”
지수가 웃으며 말하자, 민아와 소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예전 같으면 그냥 했을 텐데, 요즘은 ‘혹시 불법 아닌가’, ‘혹시 위험한가’부터 먼저 찾아보게 돼.”
“나도. 특히 바다 관련된 건 무조건 공식 체험 아니면 안 하는 걸로 마음먹었어.”
그날 셋은 서로에게 한 번 더 다짐했다. “다음에 제주도를 가더라도, 우리는 절대 자격증 없이, 규정 무시하고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제대로 준비하고, 정식으로 안내받고, 안전한 방식으로 즐기는 방법을 찾겠다고.
그리고 그 다짐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조용히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되었다. “나도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 이 세 청년 여성의 웃픈 실패담을 한 번 떠올려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꽤 많은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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