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민수다.
쉰 둘, 고향 마을에서는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늦장가로 기억된다. 이 마을에서는 서른이 넘도록 혼자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이름 앞에 붙는 호칭이 ‘총각’에서 ‘영감’으로 바뀐다. 그 사소한 호칭의 변화가, 내 인생에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집에는 나 혼자 남았다. 논 세 마지기, 밭 두 조각, 그리고 비가 새기 시작한 낡은 기와집 하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논물 빼고 넣고, 모내기하고 추수하는 사이에 어느새 마을 애들은 다 커서 도시로 떠났고, 남은 건 허리 굽은 노인들과 나 같은 중년 남자 몇 명뿐이었다.
어느 날, 동네 슈퍼 앞 평상에서 막걸리를 기울이던 중, 친하게 지내던 상철이 형이 말했다.
“야, 민수야. 너도 이제 생각 좀 해야지. 베트남 가보는 거 어때?”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농담인 줄 알았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국제결혼 이야기가, 이런 조그만 시골 마을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그날 밤, 방 한가운데 혼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베트남’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도 자꾸 떠올랐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낡은 형광등의 미세한 깜빡임, 그리고 텅 빈 집 안을 맴도는 내 한숨.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고, 같이 잠들고, 아침에 눈을 뜨면 “잘 잤어요?”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다는 상상을 해보니, 그것만으로도 목이 메어 왔다.
상철이 형은 군청 앞에 새로 생긴 국제결혼 중개업체 전단지를 내밀었다. 전단지에는 환하게 웃는 젊은 여성들의 사진과 함께,
“성실한 농촌 총각을 기다립니다”
라는 문장이 굵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연애, 사랑, 성격 따위의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고, 대신 “성실”, “부양 능력”, “순종”, “가정적” 같은 말들만 빼곡했다.나는 그 전단지를 들고 방에 돌아와, 몇 번이고 넓게 펼쳐 보았다.
“내가 정말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만나도 되는 걸까?”
라는 물음이 자꾸 떠올랐지만, 동시에“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혼자 죽을지도 모른다”
는 두려움이 그 질문을 덮어버렸다.
중개업체 사무실은 생각보다 번듯했다. 깨끗한 소파, 벽에 걸린 베트남 관광 사진들, 그리고 촬영용 조명까지 갖춰진 상담실. 정장을 입은 젊은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아버님 연세면 아직 괜찮으세요. 베트남 쪽에서는 사십 대, 오십 대 남성들도 많이 원하십니다. 다만 농촌이면 생활이 힘들 수 있으니, 그 부분은 처음부터 잘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낯설었다. 그는 내에게 결혼이 아니라, 마치 상품을 추천하듯 설명을 이어 갔다. 어떤 지역의 여성들은 더 성실하다, 어떤 지역은 성격이 활달하다, 어느 도시는 비행기로 몇 시간이면 간다, 서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고, 비용은 얼마다. 수백만 원이라는 금액이 입에서 오르내릴 때, 나는 결혼이 아니라 거래에 서명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 성실하게, 책임감 있게 살아갈 사람만 만나게 해주십시오.”
그때 내가 했던 말이다. 직원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큰 착각은 바로 그 말 속에 있었다. 책임과 성실만으로 둘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언어, 문화, 가족, 상처, 꿈, 두려움 같은 것들은 그때의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이 내게 전부였다.
몇 달 뒤, 나는 베트남행 비행기 안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구름이 지나가고, 머리 위 스크린에서는 영어와 베트남어, 한국어로 된 안내문이 번갈아 흘렀다. 나는 그중 어느 것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귀에 남는 것은, 점점 멀어지는 내 마을과 논의 풍경뿐이었다.
호치민 공항에 내렸을 때,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후려쳤다. 습기 섞인 열기 속에서 오토바이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 낯선 언어가 뒤섞여 어지럽게 밀려왔다. 공항 출구 앞에는 이미 여러 중개업체 직원들이 나와서 각자의 팻말을 들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맡기로 한 현지 코디네이터는 스물다섯 살 남자였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나에게 말했다.
“아버님,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일이 본격적인 만남 일정이고요, 오늘은 쉬시면서 베트남 음식도 조금 드셔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나를 호텔로 안내하며, 앞으로 만나게 될 여성들의 사진이 들어 있는 파일을 내밀었다.호텔 방 침대 위에 앉아, 나는 그 파일을 한 장씩 넘겼다. 사진 속 여성들의 나이는 대부분 스물둘, 스물셋, 많아야 스물여섯.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나는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싸늘해졌다.
“나와 이들 사이의 나이 차이, 언어, 시간, 삶의 무게를 정말 넘을 수 있을까?”
그런데도 파일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는 결국 계약서에 적힌 내 이름을 떠올렸다.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지불한 뒤였다.다음 날, 작은 카페의 2층에서 첫 만남이 진행되었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몇 분 간격으로 여성들이 들어와 앉았다가, 인사를 나누고, 다시 나갔다.
“취미는 뭐예요?”, “한국에 가면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부모님과는 같이 사나요?”
질문은 비슷했고, 대답도 비슷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조용한 눈을 가진 여성이 있었다. 이름은 린, 스물넷, 남부 농촌 출신.린은 내 말을 항상 한 번 더 확인하듯 조심스럽게 통역을 바라보았다. 통역이 한국어로 장황하게 내 말을 옮겨준 뒤, 다시 베트남어로 번역해 주면, 린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내리깔았다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이들보다 더 오래 내 귀에 남았다.
“한국은 겨울에 눈이 많이 와요. 시골이라 좀 춥긴 한데, 집은 따뜻하게 해 놓을 거예요.” “저는… 눈, 한 번도 못 봤어요. 추운 건… 괜찮을까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이 여행에서 설렘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웃음 뒤에, 돈과 가족과 미래에 대한 무거운 계산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이틀 만에 우리는 약혼을 결정했다. 서로를 깊이 알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중개업체는 서둘렀다.
“이런 건 인연입니다, 아버님. 망설이면 그냥 흘러가 버려요.”
그 말이 나를 밀어붙였다.린의 집은 도시에서 몇 시간이나 더 들어간 작은 마을에 있었다. 낡은 오토바이와 빨랫줄, 좁은 골목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린의 부모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플라스틱 의자 위에는 달콤한 과일과 맥주가 줄지어 놓였다. 그들의 언어를 나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웃음과 눈빛은 어느 정도 통했다.
그러나 집 안쪽 방에서, 린과 부모가 나와 중개업자를 피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표정은 진지했고, 린의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 뒤로부터 줄곧, 나는 그 대화 속에 어떤 단어들이 오갔을지 상상하게 되었다.
혼인 신고를 위한 서류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대사관, 구청, 경찰서, 통역 사무실을 몇 번이나 오가야 했고, 그 사이에도 우리는 번역기를 사이에 두고 서툰 대화를 이어 갔다. 나는 논 얘기와 한국의 계절 변화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고, 린은 가족 이야기와 동생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는 꿈을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한국 가면, 공부… 가능해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논과 밭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찬 내 삶에, 린의 꿈까지 품어 줄 여유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나중에, 기회 되면. 차근차근 해봐요.”
그 약속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도, 그때는 몰랐다.몇 달 뒤, 모든 서류가 마무리되고, 린이 한국으로 오는 날이 다가왔다. 공항에서 그녀를 맞이했을 때, 린은 두꺼운 패딩에 몸을 파묻고도 계속 떨고 있었다.
“괜찮아요?”
라고 물으니,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그 웃음은 바로 사라졌다.마을 사람들은 호기심과 기대, 그리고 경계가 섞인 눈빛으로 우리를 맞았다.
“아이고, 멀리서 왔네.”
“한국말은 좀 하나?”
“애는 언제 낳을 거야?”
축하와 관심이라는 이름 아래 쏟아지는 질문들은, 사실상 이 결혼이 마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선언 같았다.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우리 둘만의 것이 아니었다.처음 몇 주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린과 함께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고, 밥을 해 먹고, 저녁에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자막을 하나씩 짚어 주었다. 린은 예상보다 빨리 한국어를 익혀 갔고, 나는 그럴수록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 이 정도면 잘 해낼 수 있겠지. 둘이서 천천히 맞춰 가면 되겠지.”
그러나 겨울이 본격적으로 깊어지고, 논이 완전히 얼어붙었을 때, 작은 금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고립이었다. 마을에는 린과 비슷한 또래의 외국인 여성들이 몇 명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아이 돌보기에 바빴고, 각자 다른 나라에서 왔기에 언어가 달랐다. 린은 낮 동안 대부분 집에 혼자 있었다. 나는 논일 때문에 새벽부터 나가 해 질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저녁, 집에 들어오니 린이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베트남의 동영상, 가족들이 보내온 사진, 친구들의 메시지가 줄지어 있었다.
“오늘 하루 어땠어요?”
라고 묻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괜찮아요. 조금… 심심해요. 그리고… 너무 조용해요.”
나에게 그 조용함은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린에게 그 조용함은, 고향과 가족, 친구들 모든 것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상기시키는 공허함이었을 것이다. 그 차이를 나는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다.
첫 갈등은 돈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신 것 같아요. 병원비가… 조금 필요해요.”
나는 이미 결혼 비용으로 적지 않은 빚을 진 상태였다. 비닐하우스를 하나 더 지으며 대출을 받았고, 그걸 갚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형편이었다.
“지금은 좀 힘들다. 나도 빚이 많아서… 조금만 기다리자.”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린의 얼굴에서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날 밤부터 휴대폰을 붙잡고 울먹이는 시간이 늘어났다. 통역 앱에서 들리는 베트남어의 기계음이, 방 안의 공기를 더 차갑게 만들었다.중개업체에 도움을 요청해 보려 했지만, 한국에서의 계약 기간은 이미 끝난 뒤였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다 도와 드렸습니다. 이젠 두 분이 가정 안에서 잘 해결하셔야죠.”
그들의 말은 매정했지만, 계약서대로였다. 우리는 이제 철저히 둘만의 문제로 남겨졌다.그 무렵부터, 나는 술을 조금씩 더 자주 찾게 되었다. 마을 회관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들도 점점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외국 며느리들, 돈 때문에 온 거지 뭐.”
“애만 낳아 주고 나중에 다 도망간다더라.”
그런 말을 듣고 올 때마다, 나는 집에 들어와 부엌에 서 있는 린의 뒷모습을 보며 이상한 심정이 되었다. 믿고 싶으면서도 의심하는,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경계하는 마음.어느 겨울밤, 우리가 처음으로 크게 다툰 날이 있었다. 린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그냥… 조금만, 내 가족 도와주고 싶어요. 여기 와서 일도 하고, 한국어도 배우고, 나도… 뭐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요. 친구도 없어요. 돈도 없어요.”
나는 대답 대신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힘들어! 나도 빚 갚느라 허리가 휘어지는데, 나보고 어떻게 더 하라는 거야? 이 집도, 이 결혼도, 다 내가 책임지고 있잖아!”
그 말은 사실보다 과장된 것이었고, 책임이라는 말 뒤에 내 불안과 두려움을 숨기고 있었다.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말을 아끼게 되었다. 문자로는 짧게 대화했지만, 얼굴을 마주 보면 말문이 막혔다. 식탁 위에서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봄이 왔을 때, 린은 일을 하겠다며 마을 근처 공장에 지원서를 냈다. 나는 걱정을 이유로 말렸다.
“한국말도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힘든 공장에 나가면 더 고생만 해. 내가 더 열심히 일할 테니까, 집에 있는 게 좋아.”
그 말 속에는 체면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사람들이 “남자가 벌어오지도 못해서 외국인 아내를 공장에 보낸다”고 말할까 봐 두려웠다.그러나 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사람입니다. 나도 일할 수 있어요. 그냥… 집에만 있으면,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요.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고집을 꺾지 못했다.결국 린은 몰래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며칠 뒤, 우연히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그 사실을 들었다.
“네 집 사람, 공장 버스 타고 다니더라.”
그 말이 내 귀에 떨어지는 순간, 나는 수치와 분노, 그리고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집에 돌아와 따져 물었을 때, 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그런데… 나도 도와주고 싶었어요. 우리 빚도 같이 갚고 싶어요. 아버지 병원비도 보내고 싶고… 나도, 그냥 숨만 쉬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그날, 서로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상처를 주는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결국, 하지 말았어야 할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그래서 온 거야? 결국 다 돈 때문이었어?”
그 순간, 린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버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그날 밤, 린은 긴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났다. 편지에는 헝클어진 한국어와 베트남어, 그리고 번역 앱을 거친 문장이 뒤섞여 있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너무 많이 모릅니다. 나는 나의 가족을 버릴 수 없고, 나 자신도 버릴 수 없습니다. 여기서 계속 사는 것이 우리 둘 다를 망가뜨릴 것 같아요.”
린은 서울로 갔다고 했다. 공장에 다니는 친구를 따라 올라가, 거기서 새로운 일을 구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가끔 문자로 “잘 지내세요”라는 짧은 인사만이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래서 외국 며느리는 안 된다니까.”
“결국 돈 보고 온 거지 뭐.”
그 말들이 내 잘못을 가려 주는 듯해, 나는 한동안 그들 뒤에 숨었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 불행은 린 혼자, 혹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각자의 가난과 외로움, 가족과 빚, 책임과 체면에 눌린 채 충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언어를 갖지 못했다. 그 빈틈을 중개업체와 계약서, 그리고 사람들의 무심한 말들이 메워 버렸다.
1년쯤 지났을 때, 나는 결국 베트남으로 다시 갔다. 이번에는 중개업체도, 여행사도 없이 혼자였다. 린의 고향 마을 주소만 쥔 채, 나는 다시 그 뜨거운 공기를 헤치고 비좁은 골목과 흙길을 걸어 들어갔다.
린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집 앞에 걸린 빨래, 안쪽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어딘가에서 끓고 있는 국 냄새.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살아 있는 삶의 증거 같아서, 나 같은 사람이 끼어들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을 때, 나온 사람은 린의 동생이었다. 그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안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린은 방 안에서 나와 서 있었다.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 보이는 표정, 손에는 무엇인가를 적다 만 노트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통역은 없었지만, 그동안 각자 조금씩 더 익힌 언어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갔다. “미안해요.”, “나도 미안해요.” 그 말만은 서로의 언어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린은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한국어를 조금 더 배우고, 베트남으로 돌아와 한국 기업과 거래하는 회사에서 통역 겸 사무보조로 일하고 있다는 것. 집에는 자주 돈을 보내고 있고, 언젠가 다시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을 여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것.
나는 린에게 물었다.
“그때, 우리 집 떠날 때… 나한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어요?”
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나는… 당신이 나를 ‘아내’로만 보지 말고, ‘사람’으로 봐주길 바랐어요. 나도 꿈 있고, 두렵고, 외로운 사람. 그냥… 고향 떠난 외국 사람 아니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허벅지를 꽉 쥐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녀에게 “우리 결혼을 지켜 달라”고만 매달렸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제대로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슴을 후벼팠다.
우리는 결국, 법적으로 이혼 절차를 밟기로 합의했다. 린은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당신 덕분에 한국을 알았어요. 힘든 기억도 많지만, 그 덕분에 지금 내 삶도 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었어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리 둘 다,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죠. 나라를 넘는 결혼은, 더 많은 준비와 시간과 도움을 필요로 했는데, 우리는 너무 빨리, 너무 쉽게 결정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구름 사이로 저녁 햇빛이 비치고, 멀리 바다가 반짝였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해진 건, 이 불행의 이름을 누구 한 사람에게만 붙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시골의 늙어가는 남자, 가난한 베트남 농촌의 딸, 둘을 이어 붙이는 중개업체, 책임과 체면을 강요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제도의 빈틈. 그 모든 것들이 얽혀서, 한 가정을 만들었고, 또 한 가정을 무너뜨렸다.
지금도 나는 같은 집, 같은 논에서 살고 있다. 아침이면 여전히 안개가 들판 위로 내려앉고, 저녁이면 개들이 멀리서 짖는다. 혼자인 건 예전과 같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그 고독을 바라본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외로움을 채워 줄 사람’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혹시 언젠가 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국적이 어디든, 그 사람의 삶과 두려움, 꿈에 대해 끝까지 들으려 한다. 그리고 내 삶의 고단함을 핑계로, 상대의 존재를 지워 버리지 않으려 한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 같은 사람이 다시 같은 선택을 했을 때, 적어도 더 많은 질문을 던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정말 이 사람과 함께 살 준비가 된 것인가?”,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서로의 상처를 견딜 시간과 여유가 있는가?”, “나의 외로움과 가난을 상대의 삶 위에 그대로 얹어버리려 하는 것은 아닌가?”
언젠가 마을 회관에서, 또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야, 민수야. 너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거 어때? 요즘에도 베트남, 필리핀, 이런 데 좋은 사람들 많다던데.”
그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형, 사람을 나라 이름으로 부르지 말자. 그 사람들도 다 자기 인생이 있어.”
내 말에 형은 잠시 멈칫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을이 들판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한참 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린이 처음 눈을 본 날, 떨면서도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결국 함께 살지 못했지만, 그 웃음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여전히 가슴 한켠이 시리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해진다.
인간의 삶은 때로는 실패한 선택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실패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그 선택은 단순한 불행이 될 수도, 조용한 성찰이 될 수도 있다. 내 고향 들판 위에 내리는 안개처럼, 이 이야기도 언젠가 천천히 흩어져 갈 것이다. 다만 그 안개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한 발자국 정도는 더 조심해서 내디딜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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