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 하루를 버티는 어느 엄마의 길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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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로 하루를 버티는 어느 엄마의 길었던 하루
육아는 기쁨이자 전쟁이다.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아도, 누군가의 하루를 온몸으로 지켜낸 한 엄마의 아주 사소하지만 치열했던 24시간.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러나 누구도 완전히 이해해 주지 못하는 엄마와 아이의 평범한 하루 한 조각.
05:12 AM 알람보다 먼저 깨는, 엄마의 몸
눈을 떴을 때, 아직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다. 창밖은 여전히 어둡고,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방 안을 희미하게 적신다. 몇 시인지 궁금했지만 굳이 핸드폰을 찾지 않는다. 몸이 먼저 안다. 곧 울음을 터뜨릴 작은 존재 때문에 내 잠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이미 오래전에 배웠다.
옆을 돌아보니 아이가 내 팔을 배게 삼은 채, 땀에 젖은 앞머리를 이마에 붙이고 자고 있다. 뜨거운 체온이 팔에 그대로 전해진다. 팔은 저릿하지만, 어깨는 뻐근하지만, 팔을 뺄 수가 없다.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 아이가 깨버리면, 지금 남아 있는 이 고요한 새벽이 통째로 무너져 버릴 것 같아서.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며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이유식, 빨래, 설거지, 장난감 정리, 집안 청소, 내일 있을 예방접종 확인, 남편 도시락, 그리고 틈틈이 하는 온라인 강의 과제까지. 머릿속으로만 나열해도 숨이 찬다. 그런데 아이는 오늘도, 새로운 변수들을 마음껏 만들어낼 예정이다.
아이가 작은 신음 소리를 내더니 몸을 꿈틀거린다. 그 순간, 온 신경이 아이에게로 쏠린다. 긴장된 숨을 참고 잠깐 기다리는데, 예상대로 울음이 터진다. 얇은 새벽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울음. 남편이 깨지 않게 재빨리 아이를 안아 든다.
품에 안긴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젖을 찾는다. 따뜻한 체온이 가슴에 닿자, 그제야 나도 조금 눈이 떠지는 느낌이다. 커튼 틈 사이로 아주 희미한 새벽빛이 들어오고,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내 옷깃을 꼭 움켜쥔다.
수유를 마치고 아이를 다시 눕히려는데, 아이는 내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입을 오물거리더니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쫙 벌어진 눈동자 속에 내가 비친다. 그걸 보는 순간, 방금 전까지 쌓여 있던 짜증과 피곤함이 잠시 옅어진다.
겨우겨우 등을 토닥이며 다시 잠들게 한 뒤, 조심조심 침대에서 빠져나와 부엌으로 간다. 발 뒤꿈치를 거의 들고 걷다시피 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엄마의 하루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 그리고 유일하게 나 혼자 쓰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마저도 설거지와 도시락 싸기, 그리고 오늘 먹을 식사 준비로 가득 차 있다.
커피포트를 올리고 그 옆에서 냄비에 다시물을 올린다. 전날 설거지를 미처 끝내지 못한 그릇들이 싱크대에 수줍게 쌓여 있다. 그릇에 묻은 소스 자국을 보면서 어제 저녁 아이가 밥을 엎던 장면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 옆에서 "미안, 나 회의 준비 때문에…"라고 말하던 남편의 얼굴도 같이 떠올라 버린다.
"나도 회의 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이름 없는 회의. 기저귀 갈이 회의, 이유식 준비 회의, 장난감 치우기 회의, 아이 달래기 비상 회의… 그리고 밤마다 열리는, 나 혼자만의 반성 회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컵에 인스턴트 커피를 타면서도, 왠지 죄책감이 조금 묻어난다. 제대로 된 원두 커피 한 잔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삶.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가 삼키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진짜 내가 나로 돌아온 것 같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가 이미 뒤척이며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의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 또 다른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 아기 일어났어요?"
싱긋 웃으며 말을 걸어 보지만, 속으로는 "벌써…" 하는 한숨이 가볍게 따라 붙는다.기저귀를 갈려고 하니 아이는 갑자기 뒤집기를 시전한다. 다리를 쭉 뻗고 몸을 비틀며 도망가려 한다. "가만 있어, 한 번만, 금방 끝나." 수없이 했던 말을 또 반복한다. 아이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신 작은 발로 내 배를 툭툭 찬다. 날 차는 건지, 세상을 밀어내는 건지 알 수 없다.
간신히 기저귀를 갈아채고 거실로 나가면, 장난감이 어제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치웠던 것도 같은데, 어제 저녁 기억이 흐릿하다. 아마 치우다가 아이가 울어서 중간에 말았겠지. 대충 한쪽으로 밀어 두고 아이 의자를 가져와 앉힌다.
오늘 아침 메뉴는 어제 만들어 둔 이유식과 부드럽게 구운 달걀프라이다. 밥숟가락에 조금씩 떠서 아이 입으로 가져가는데, 아이는 입을 앙다물다 겨우 한입을 받아먹는다. 그리고는 그걸 다시 흘린다. 턱으로, 목으로, 옷으로, 의자 아래로. 이미 바닥에는 쌀알과 야채 조각들이 흩뿌려져 작은 별자리처럼 빛난다.
아이가 밥을 잘 먹는 날과 안 먹는 날의 차이는, 하늘의 별자리만큼이나 예측이 어렵다. 어제 잘 먹었다고 오늘도 잘 먹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그런 예측 불가능함은 대부분, 엄마의 계획과 체력을 정면으로 박살 내 버리곤 한다.
한쪽 손으로는 아이의 입 주변을 닦고, 다른 손으로는 쏟아진 밥그릇을 세우고, 허리로는 의자가 뒤로 밀리지 않게 막으면서도, 눈은 전자레인지에 돌려 두었던 남편 반찬을 본다. 머릿속은 이미 다음 단계로 달려가고 있다.
"이따가 남편 깨워서 밥 먹이고, 아이 옷 갈아입히고, 남편 출근하면 그때 설거지를…"
곁눈질로 시계를 보니 이미 7시 반을 훌쩍 넘겼다. 남편을 깨워야 할 시간이다. 방으로 돌아가 커튼을 조금 젖히고 조심스레 부른다.
"여보, 일어나야 돼."
남편은 이불 속에서 손만 쑥 내밀어 핸드폰을 더듬더듬 찾아 알람을 끈다."응… 5분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다시 거실로 돌아와 아이를 붙잡는다.급하게 셔츠를 입으며 나오는 남편의 뒤로, 나는 도시락통을 건넨다.
"반찬은 어제 먹던 거랑 비슷해. 오늘 야근이라고 했지?"
남편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양말을 신는다. 아이는 그런 아빠를 향해 두 팔을 뻗는다. "빠빠빠빠!"잠깐 고민하다가 남편이 아이를 한번 안게 한다. 남편 품에 안긴 아이는 갑자기 활짝 웃는다. 긴 시간 같이 있는 나보다, 아침에 잠깐 보는 아빠를 더 반기는 것 같아 순간 이상한 감정이 스친다. 서운함인지, 부러움인지, 질투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제야 집 안은 조용해진다. 하지만 그 고요는 아주 잠깐이다. 아이는 이미 새로운 장난감을 찾기 위해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나는 남편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텀블러와 식탁 위 흘린 국물 자국을 바라본다. 눈앞이 살짝 아득해진다. 분명히 아침 내내 움직였는데, 집은 왜 더 엉망이 된 걸까.
09:30 AM 끝없는 반복, 장난감과 빨래와 기저귀
아이는 이젠 완전히 깨어난 상태다. 기저귀를 한 번 더 갈아주고,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아 주면서 장난감 몇 개를 거실로 끌어다 놓는다. 딸랑이, 헝겊책, 말랑한 블록. 분명 방금까지 장난감 바구니 안에 가지런히 있었던 것들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장난감 바구니는 보관함이 아니라 ‘뒤집는 대상’일 뿐이다.
아이가 잠깐 혼자 노는 틈을 타 세탁기를 돌린다. 빨래바구니 안에는 아이 옷, 수건, 내 티셔츠, 남편 셔츠가 무질서하게 섞여 있다. 세탁세제를 계량컵에 덜어 넣으며, 문득 예전에 입고 다니던 원피스들이 생각난다. 드라이클리닝 맡길 걱정을 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지금 내 옷의 기준은 오직 하나다.
"얼마나 편한가. 얼룩이 잘 지워지는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바닥에 떨어진 쌀알과 야채 조각들을 주워 담는다. 아이는 옆에서 블록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내 바지를 붙잡고 선다.
"엄마, 엄마, 엄마."
정확한 단어는 아니지만, 그 소리에 내 이름이 들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힘들어도, 이 집 안에서는 내가 꼭 있어야만 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든다."내가 아니면 누가 이 아이를 이렇게까지 사랑해 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는 가슴이 뜨거워지다가도, "그런데 왜 나의 하루는 이렇게까지 지워져야 할까." 하는 질문이 곧바로 따라붙는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간식을 챙겨주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노래도 불러본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노래를 하다가, 어느 순간 가사가 헷갈려도 아이는 개의치 않는다. 내 목소리만 들리면 좋아서 깔깔댄다. 그 웃음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는다. 그러다 보니, 방금 전까지의 피로가 잠시나마 눌려 버린다.시계를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진다. 아이에게 먹일 점심을 먼저 챙겨야 한다. 냄비에 다시 이유식을 데우고, 옆에서 내 밥을 대충 차린다. 김치 몇 조각, 남은 반찬, 계란을 하나 풀어 스크램블을 만든다. 예전 같으면 점심 메뉴를 고르고, 맛집을 검색하고, 친구에게 "점심 뭐 먹을래?"라고 문자를 보냈을 시간이다.
아이를 다시 의자에 앉히고, 작은 숟가락으로 한 입씩 떠먹인다. 오늘은 그럭저럭 잘 먹는 편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아~"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 모습을 핸드폰에 담고 싶다. 하지만 한 손에는 숟가락, 다른 손에는 물컵. 사진을 찍으려면 누군가 대신 숟가락을 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귀여운 순간은 눈에만 담겨 지나가 버린다.
아이의 식사가 끝나고, 내 차례가 온다. 그런데 아이는 이미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지루해졌다. 내 밥을 먹으려 숟가락을 들면, 아이는 내 무릎을 치거나 옆에서 소리 내어 울거나, 장난감을 바닥에 계속 떨어트린다. 나는 겨우 몇 숟가락을 허겁지겁 입에 넣는다. 씹는지 그냥 넘기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나 언제 마지막으로 누가 차려준 밥을 편하게 앉아서 먹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명절 때? 아니, 그때도 아이 보느라 제대로 앉아서 먹지 못했다. 생일? 그날도 아이가 열이 나서 응급실에 다녀왔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누군가의 손님이 아니라 한 집의 엄마가 된 후로는, 누군가에게 제대로 대접받는 식사는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아이가 점점 칭얼거리는 횟수가 많아진다. 눈도 자주 비빈다. 낮잠 시간이다. 하지만 아이는 쉽게 잠들지 않는다. 안아 달라고 팔을 뻗었다가, 안아주면 금방 또 내려달라고 몸을 비틀고, 침대에 눕히면 울음을 낸다. 몸은 확실히 피곤해 보이는데, 마음은 잠들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결국 안고 방 안을 빙빙 돈다. 팔과 허리가 아파오지만, 멈출 수 없다. 아이가 내 어깨에 턱을 괴고, 따뜻한 숨을 내쉰다. 조금씩 몸이 무거워지더니, 결국 아이의 눈이 천천히 감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는다. 숨을 죽이고 팔을 빼내는 순간이, 마치 폭탄 해제하는 시간처럼 긴장된다.
다행히 아이는 그대로 잠이 든다.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을 잠깐 바라본다. 자고 있을 때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순하고 예쁘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하루 동안 아이에게 쏟아냈던 짜증과 큰소리들이 몽땅 부끄러워진다. 손가락으로 살짝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고 이불을 덮어 준다.
방문을 살짝 열어두고 방을 나와, 부엌 시계를 본다.
"이제부터가 진짜 자유 시간이다."
하지만 그 자유는 빨래 널기, 설거지, 장난감 정리, 저녁 준비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세탁기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빨래를 꺼낸다. 아이 옷을 하나씩 펴서 널다 보면, 작은 손목과 발목이 떠오른다. 이렇게 작은 옷을 입고도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는 아이. 그 뒤를 쫓느라 나는 늘 숨이 차 있다.
장난감들을 대충 크기대로 모아 한쪽에 쌓아 둔다. 분명 아이가 깨면 다시 다 꺼내 놓을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거실이 조금이라도 덜 어질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깨끗한 바닥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정리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잠깐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친구가 올려 둔 여행 사진, 회사 동료였던 사람이 올린 회의 인증샷, 그리고 "퇴근길 카페에서"라는 문구와 함께 올라온 라떼 사진. 화면 속 사람들은 오늘도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중 누구도 지금 내 옆에서 기어 다니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는다.
"혹시 나도, 저기 어딘가에 있었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아이와 함께 있는 내가 더 소중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두 마음이 한 가슴 안에서 계속 부딪힌다.
방문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아이의 울음이 터진다. 낮잠이 끝났다는 신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설거지 몇 개를 싱크대 안에 남겨둔 채, 재빨리 방으로 달려간다. 아이는 이불을 발로 걷어차며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찾는다.
품에 안아 토닥이며 "우리 아기 잘 잤어?"라고 묻는다. 아이는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고 훌쩍인다. 그 따뜻한 온기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뜬다. 아직 오후가 한참 남았다는 사실이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
아이와 함께 거실로 나와 블록을 맞추고, 노래를 틀어 함께 흔들흔들 춤도 춰 본다. 가끔은 소파에 기대어, 아이가 혼자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럼에도 내 귀와 눈은 항상 아이에게 고정되어 있다.
"저 작은 손이 콘센트에 닿지는 않을까, 소파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작은 장난감을 입에 넣지는 않을까."
두 눈으로 아이를 지키는 일이, 내 하루의 가장 큰 임무다.창밖으로 비치는 햇빛이 점점 노란색에서 주황색으로 바뀐다. 아이와 바닥에 앉아 그림책을 넘기다가, 문득 하루가 거의 끝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가 끝나 간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다. "곧 남편이 올 시간이겠지"라는 기대와 "이제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동시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열어 무엇을 해 먹을지 눈으로 재빨리 훑는다. 애매하게 남아 있는 채소와 고기들, 그리고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을 머릿속에서 조합해 본다. 대단한 요리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한 끼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매일 메뉴를 고민하는 일은 은근히 정신을 갉아 먹는다.
아이를 유튜브 동요 영상 앞에 잠시 앉혀 두고, 급하게 프라이팬을 달군다. 야채를 썰어 볶고, 고기를 넣고, 간을 맞춘다. "영상 너무 오래 보여주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불 앞에서 아이까지 봐 줄 여유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는다.
부엌에서 지글지글 소리가 나는 가운데, 거실에서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진다. 급히 불을 약하게 줄이고 달려 나가 보니, 아이는 넘어져서 무릎을 잡고 울고 있다. 그 작은 무릎에 살짝 붉은 자국이 생겼다. 나는 아이를 안아 들고 "괜찮아, 괜찮아"를 백 번쯤 반복한다. 내 마음이 더 아파서, 아이보다 내가 더 울컥할 것 같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남편이 "나 왔어"라고 말한다. 그 소리에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현관 쪽으로 기어가거나 달려간다. 하루 종일 내 옆에 있었던 아이지만, 아빠의 등장에는 또 다른 종류의 기쁨이 묻어난다. 나는 부엌에서 국을 끓이다 말고 소리만 듣는다.
"아빠 왔네, 좋겠다."
밥을 차려 식탁 위에 놓고, 남편과 아이를 자리에 앉힌다. 아이에게는 따로 식판을 준비하고, 남편 앞에는 오늘 하루 내가 만든 반찬들이 놓인다. 남편은 젓가락을 들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오늘 팀장님이랑 회의가 있었는데…", "새로 들어온 대리가…" 회사 이름과 사람 이름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그 말을 귀 한쪽으로 듣고, 다른 쪽 귀로는 아이가 흘리는 밥그릇 소리를 듣는다. 중간중간 "아, 그랬구나", "힘들었겠다"를 자동으로 말하면서도, "나도 오늘 이야기할 게 많은데"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고여 있다. 하지만 내 하루에는 팀장도, 회의실도, 프레젠테이션도 없다. 대신 수유, 기저귀, 빨래, 이유식, 그리고 수없이 반복된 "안돼", "위험해", "조심해"가 있을 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오늘 하루를 보고하고 싶다. 칭찬을 받고, 위로를 받고,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나 대부분의 날, 엄마의 하루는 보고서도 없고, 평가서도 없고, 인정도 없이 조용히 지나간다.아이는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일어나려 한다. 숟가락을 들고 도망가기도 하고, 밥을 손으로 쥐어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남편이 "안 돼,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순간,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 울음은 곧바로 나를 향한다. 마치 "엄마, 나 혼났어"라고 일러바치는 것처럼.
나는 중간에서 아이를 달래고 남편에게도 한마디 한다.
"조금만 부드럽게 얘기해 줘."
남편은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쉰다."나도 오늘 하루 종일 힘들었어."
그 말 앞에서, 나도 오늘 하루 종일 힘들었다는 말을 꺼내기가 더 어려워진다.저녁 식사가 끝나면, 본격적인 밤 준비가 시작된다. 남편이 설거지를 도와줄 때도 있고, 그냥 거실에 누워 휴식을 취할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아이 목욕은 대부분 내 몫이다. 욕실에 물을 받으면서, 아이의 옷을 하나씩 벗긴다. 아이는 목욕을 좋아해서, 옷을 벗기기 시작하면 벌써부터 콧소리가 달라진다.
작은 욕조에 아이를 앉히고, 물을 손으로 떠서 머리에 살살 끼얹는다. 아이는 손으로 물을 휘저으며 웃는다. 따뜻한 물에 젖은 피부, 비누 냄새, 아이의 웃음소리. 하루 중 가장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이지만, 그 뒤에는 목욕 후에 다시 치워야 할 물 자국과 수건 더미가 기다리고 있다.
샴푸 거품을 내어 아이 머리를 감기면서, "우리 아기 머리카락 많이 자랐네" 하고 혼잣말을 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거의 없다시피 하던 머리카락이, 이제는 드라이기로 말려 줘야 할 만큼 자랐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의 하루들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하루들이, 온전히 내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파자마를 입힌 아이를 안고 침실로 들어온다. 조명을 조금 낮추고, 작은 스탠드만 켠다. 아이는 아직도 에너지가 남아 있는지 침대 위를 기어다니며 웃는다. "이제 잘 시간이야"라고 말하지만, 아이에게 그 말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옆에 누워 아이에게 짧은 동화책을 한 권 읽어준다. 중간중간 글자를 건너뛰어도 아이는 모른다. 대신 내 목소리의 리듬과 옆에 있는 내 체온을 느끼며 점점 눈이 감긴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벌떡 일어나 "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마치 "나 아직 안 잘 거야"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결국 수유를 한 번 더 하고, 등을 토닥이며 자장가를 흥얼거린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사랑하는 우리 아가…"
노래를 부르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맺힐 때도 있다. 가사 때문이 아니라, 오늘 하루 동안 쌓인 피로와 서운함과 사랑과 죄책감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때문이다.아이가 아주 천천히, 정말로 천천히 잠이 든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숨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뺀다. 어둠 속에서 아이의 윤곽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방을 나온다.
거실로 나오니 불이 대부분 꺼져 있고, 남편은 소파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다. TV에서는 소리가 줄어든 예능 프로그램이 흘러나온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싱크대를 한 번 더 본다. 사용한 컵 하나, 작은 접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냥 내일로 미루고 싶지만, 결국 다시 수건을 들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위한 시간을 떠올린다. "핸드폰으로 드라마 한 편 볼까, 아니면 그냥 씻고 잘까." 몸은 당장 쓰러져 자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마음은 오늘 하루 나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서운하다.
짧은 영상을 몇 개 보다 보면, 어느 순간 화면이 흐릿해진다. 눈이 감기려는 순간, 방 안에서 아이가 "흑…" 하는 소리를 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재빨리 방문 앞으로 다가선다. 다행히 깊은 잠을 자고 있는지 곧 조용해진다. 문고리에 손을 올린 채 한참 서 있다가, 천천히 손을 뗀다.
세면대 앞에 서서, 오늘 처음으로 내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본다. 수분 크림을 바르며 여기저기 늘어진 피부를 만져 본다. "예전 같지 않네"라는 말이 입가에서 맴돌다가, 필요 없다는 듯이 사라진다. 예전 같지 않은 건 내 몸뿐만이 아니다. 내 하루도, 내 생각도, 내 우선순위도, 모두 예전 같지 않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옆에는 일정한 호흡으로 자고 있는 아이와 남편이 있다. 하루 종일 마음속으로 수십 번쯤 "나도 힘들어"라고 외쳤지만, 정작 아무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누군가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지 않아도, 내일 아침이 되면 나는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 알람보다 먼저, 아이의 울음보다 먼저, 이 집의 엄마로서.
"오늘도 끝까지 버텨낸 나에게,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진짜 많이 애썼다고 말해 주고 싶다."
비록 그 말을 해 주는 사람이 나뿐이라도, 그 말 하나로 나는 내일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긴다.언젠가 아이가 더 자라 나를 기억하게 될 때, 오늘 이 긴 하루의 전부를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는 남았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언제나 곁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조금 피곤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따뜻했던 사람."
그게 바로, 오늘 하루를 힘겹게 버텨낸 나였다는 사실을.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묵묵히 하루를 버티고 있을 모든 엄마들에게, 조용한 응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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