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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로 테무 새벽배송이 온 도시를 흔들던 밤 택배 현장에 있는 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새벽배송 논란, 그리고 그 속에서 뒤늦게 깨어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테무 #새벽배송논란 #택배기사이야기 #플랫폼전쟁 “알람 안 맞춰도 돼. 테무에서 시키면 새벽에 온다던데?” 어느 겨울 저녁, 서울 변두리의 작은 빌라 거실에서 지연은 농담처럼 말하고 곧바로 스마트폰 화면을 넘겼다. 화면 안에는 형형색색의 상품 썸네일과 믿기 힘든 가격, 그리고 눈에 확 들어오는 한 줄이 있었다. 오늘 23시 59분 이전 주문 시, 내일 새벽 도착. 옆에서 라면을 먹던 남편 민수는 젓가락을 멈추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몇 년째 플랫폼 개발자로 일하다가 최근 구조조정에 휘말려 계약직으로 전환된 그는, 숫자와 구조에는 빠삭했지만 변화의 속도에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새벽배송? 저 가격에? 저 배송비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물류 네트워크와 인건비, 창고 운영 비용이 떠오르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와, 진짜 싸다. 근데… 저걸 누가 배송하지?” 그 시각, 도심 외곽의 물류센터에서 준호는 바코드 스캐너를 쥔 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손등을 타고 흐르는 땀은 차가웠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동네 마트의 배송 기사였다. 점장은 친근했고, 단골 손님들의 안부를 물으며 일하는 맛이 있었다. 하지만 대형 플랫폼과 가격 경쟁에서 밀린 동네 마트는 문을 닫았고, 그는 더 큰 물류회사로 옮겼다가, 다시 최근 들어 외국계 플랫폼과 계약한 배송 대행 업체로 옮겨왔다. “오늘 테무 물량 또 늘었대.” 동료 기사가 툭 던진 말에 준호는 고개를 돌렸다. 파란색, 주황색, 초록색, 그리고 이제는 생소...

시골 집에 내려온 밤손님

시골 집에 내려온 밤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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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집에 내려온 밤손님

한 번 튀어나온 아버지의 험한 농담이, 시골 마을 전체를 뒤집어 놓은 밤. 말 안 듣는 아이를 혼내 주려던 이야기 속 귀신은 정말로 나타난 걸까, 모두가 조금씩 의심하던 그 날의 소동담.

시골 마을
가족 이야기
무서운 밤
소동극
배경: 깊은 산골 끝 마을의 초가집 한 채 계절: 여름과 가을의 경계, 벌레 소리가 두꺼워지는 밤
별이 촘촘히 빛나는 시골 밤하늘 아래 외딴 초가집이 실루엣으로 보이는 풍경

그 해 여름,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날 밤, 박 노인네 집에서는 분명 뭔가가 있었다니까.”

하지만 정작 그 집 식구들조차, 그게 뭐였는지 끝내 말로 정리하지 못했다.

산 두 개를 넘고, 좁디좁은 비포장 길을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가야 보이는 마을이 있었다. 버스도 하루에 두 번만 오고, 슈퍼라고 해봐야 할머니가 라면과 과자를 파는 작은 간이 잡화점이 전부인 곳. 그 마을 제일 끝, 감나무와 옛 우물이 있는 집이 박성진의 집이었다.

성진에겐 여덟 살짜리 아들, 박준호가 있었다. 준호는 마을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였다. 돌 담장을 타고 넘다 떨어져 무릎을 까지는 것은 예사고, 이웃집 장독대를 숨어 들어가 놀이터 삼다가 고추장을 엎지르고, 닭장을 열어 놓아 닭들을 도망가게 만든 적도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아침부터 준호는 논길을 뛰어다니더니, 점심 무렵엔 외양간에 들어가 소 꼬리를 잡아당기고, 오후에는 다락에 숨어 할머니의 간식용 강정을 몰래 집어먹다가 들켰다.

성진은 하루 종일 논에서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하고 돌아와, 집 앞마당에서 엎드려 개구리를 dissect 하듯 들여다보는 준호를 보는 순간, 하루치 인내심이 바닥나는 소리를 들었다.

“야, 박준호!”

그의 목소리는 마당을 가로질러 논둑 끝까지 튕겨 나갔다.

준호는 깜짝 놀라 손에 쥔 개구리를 놓치고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옆에서 베를 짜던 할머니가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또 시작이구먼…”

저녁이 되자, 어둠이 산등성이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왔다. 마을 가로등은 몇 개 되지도 않았고, 달빛마저 흐렸던 그날 밤, 박 씨 집 토방 위 호롱불만이 노란 숨을 쉬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작은 등잔불 하나가 따뜻하게 빛나며 주변을 희미하게 비추는 모습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까지도 성진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준호는 아버지 눈치를 보며 밥을 먹었지만, 장난끼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밥풀을 튕겨 여동생의 이마에 붙게 만들고, 된장국에 고추를 몰래 더 넣었다.

결국, 탁. 성진의 젓가락이 상 위에 세게 내려앉았다.

“그만 좀 해, 이 놈아.”

낮에 논에서 들던 목소리와는 결이 달랐다. 짧고 낮게 가라앉은 그 말투에, 상 위의 숟가락들이 모두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아내, 수진도 손을 멈추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적막을 깨듯,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한 번 울렸다.

“오늘 같은 밤에, 말 안 듣는 애들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

성진이 낮게 물었다.

준호는 고개를 반쯤 떨군 채, 눈만 데구루루 굴리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장난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몰라요.”

“모르면 알려줘야지.”

성진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비틀렸다. 하루 종일 쌓인 피로와 짜증이, 그를 어설픈 복수심으로 이끌었다.

“오늘 같은 어두운 밤에는 말이다… 산 너머에서 ‘밤손님’이 내려온다.”

“밤손님이요?”

준호의 여동생 주희가 조그맣게 되물었다.

“그래. 말 안 듣는 애들만 골라서, 포대자루에 쑤셔 넣어 어깨에 메고 산 위 외딴집으로 데려가는 놈이지. 거기 가면 다시는 엄마, 아빠 얼굴 못 보는 거야.”

성진은 더 이상 말로만 하는 혼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좀 세게 겁을 주자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깨가 삐뚤어질 정도로 애들을 많이 메고 다녀서, 사람들은 그놈을 ‘어깨 삐뚤어진 밤손님’이라고 부른다더라. 밤에 울음소리 들리지? 멀리서 ‘히잉…’ 하는 소리.”

그는 창밖을 힐끗 보았다.

마침 그때, 골짜기 쪽에서 부엉이 울음소리가 울렸다. “부엉—” 하고 길게 끌리는 울음. 아이들은 동시에 숨을 삼켰다.

“저, 저 소리요…?”

“그래, 신호지. 말 안 듣는 애들 있나 살펴보러 내려온다는 신호.”

준호의 손이 저절로 밥그릇에서 떨어졌다. 그제야 낮에 저지른 장난들이 머릿속을 줄줄이 떠올랐다.

“근데… 진짜예요?”

“진짜지. 너도 오늘 하루 종일 말 안 듣고, 장난치고, 할머니 간식 훔쳐 먹고… 그놈이 너 이름 다 외웠을 거야.”

“아이고, 여보. 애들 겁주지 말고.”

수진이 마른 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성진은 이미 멈출 타이밍을 놓친 눈치였다.

“이런 건 어릴 때 확실히 겁을 줘야 말을 듣는다니까. 나도 어릴 때 그렇게 컸어.”

그는 스스로에게도 말하는 듯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옆에서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놈의 밤손님 타령 또 시작이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집 사람들은 몰랐다. 그날 밤만큼은, 그저 겁주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밥을 먹고, 설거지도 끝나고, 마당의 호롱불만이 마지막으로 꺼질 준비를 하던 시각. 아이들은 이불을 펴고 누웠지만, 준호는 뒤척이기만 했다.

“야, 준호야. 안 잘 거야?”

옆에서 누운 주희가 속삭였다.

“쉿. 들으면 안 돼.”

“뭐가?”

“밤손님 발자국 소리.”

준호는 진지하게 말했다.

창문 밖에선 풀벌레 소리가 떼로 울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마당 쪽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오래된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도 같았다.

두 아이는 동시에 몸을 굳혔다. 준호의 심장은 뛰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불 속에서 바들바들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 문 열리는 소리 아니야?”

주희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쉿, 조용히 해 봐.”

준호는 귀를 바짝 세웠다.

대문 쪽에서, 이번엔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대문 빗장이 다시 걸리는 듯한 소리였다.

이어서, 천천히 자갈길을 밟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갈 알갱이가 밟힐 때마다, 사각, 사각, 소리가 고요한 마당을 가득 메웠다.

희미한 달빛 아래 어두운 시골집 마당과 집의 실루엣이 보이는 밤 풍경

“온다…”

준호가 거의 숨을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마치 누군가 무거운 것을 메고 천천히 걷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묵직하게.

그러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한 걸음. 멈추고, 또 한 걸음.

아이들은 그 소리가 집 바로 앞 마루까지, 아니, 방 앞까지 다가온 것 같다고 느꼈다.

“형, 포대자루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아…”

주희가 울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아니야… 그럴 리…”

준호도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아버지가 말한 밤손님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깨가 삐뚤어지도록 아이들을 메고 다니는 밤손님. 얼굴은 검은 수건으로 가려져 있고, 손은 사람 것 치고는 너무 길고 가늘며, 걸을 때마다 숨소리가 “하… 하…” 하고 들린다고 했다.

갑자기, 방문이 “톡톡” 하고 두드려졌다.

“준호야, 자냐?”

낮게 깔린 아버지 목소리였다.

하지만 준호는 그 목소리마저 밤손님의 변장으로 들렸다. 그는 이불 속에서 바들바들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벌써 잔 모양이네.”

방문 밖에서 성진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음을 돌렸다.

방문이 다시 조용해졌을 때, 준호는 간신히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미 마음속에는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형, 밤손님이야?”

“모르겠어… 근데 아빠도 속아서 밤손님한테 문 열어 준 것 같아.”

아이의 상상은 이미 현실과 뒤섞여 버렸다.

그때 안채 쪽에서 탁자에 뭐가 떨어지는 소리, 그 다음엔 “아이, 깜짝이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봤지? 엄마도 놀랐잖아…” 주희가 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방 안의 공기가 점점 무거워졌다. 호롱불은 거의 다 타 들어가며, 심지에 파란 불씨만 남기고 있었다.

얼마 후, 집 안은 모두 잠든 듯 조용해졌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하지만 준호는 도무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밤손님이 혹시라도 창문 틈으로 손을 뻗어 자신을 끌어낼 것만 같았다.

결국 그는 결심했다.

‘숨으면 안 된다. 도망쳐야 한다.’

“주희야.”

“응…?”

“우리 도망가자. 외양간 뒤로. 거기 숨으면 못 찾을 거야.”

“지, 지금?”

“응. 밤손님이 다시 올지도 몰라. 지금이 기회야.”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이건 이미 대탈출 작전이 되어 있었다.

둘은 이불을 살짝 들추고, 마룻바닥이 삐걱대지 않게 조심조심 기어 나왔다. 방문을 열면 소리가 날까 봐, 작은 구멍을 통해 마당을 먼저 엿봤다.

마당에는 희미한 달빛이 깔려 있었다. 감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땅 위에 괴상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달빛 아래 감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조용한 시골 마당의 밤 풍경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준호가 속삭였다.

“밤손님은 그림자처럼 다닌다니까.”

주희의 말에, 둘은 다시 동시에 숨을 멈췄다.

그래도 도망쳐야 했다. 준호는 용기를 내어 방문을 아주 조금 열었다. 삐걱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손등에 힘을 잔뜩 줬다.

문틈이 어른 한 명이 힘들게 지나갈 만큼 벌어졌을 때, 아이들은 고양이처럼 몸을 구부려 슬쩍 빠져나왔다.

마루는 물론 차갑고, 밤공기는 축축했다. 흙바닥에 발을 디디자마자, 풀잎이 발목을 간질였다.

“외양간 뒤로 가자니까.”

준호가 앞장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개가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마치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마당을 향해 짖고 또 짖었다.

“으악!”

주희가 비명을 질렀고, 준호도 깜짝 놀라 멈춰 섰다.

개는 외양간 쪽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그 눈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였다.

“거봐! 밤손님 온 거라니까!”

주희가 울먹이며 준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준호는 두려움과 책임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자신이 도망가자고 해놓고, 이제 와서 방으로 다시 들어가자고 할 수도 없었다.

그때, 외양간 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분명 사람 형체 같았다. 게다가 어깨가 조금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저, 저거…”

주희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울음이었다.

준호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엄마아아아아!”

아이의 절규가, 고요한 산골 밤공기를 찢었다.

안채에서 먼저 깬 사람은 할머니였다.

“이놈들이 또 뭔 소리야!”라고 소리치며,

허리를 부여잡고 마당으로 나왔다.

뒤이어 성진과 수진도 허둥지둥 뛰어나왔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성진이 소리쳤다.

그 순간, 외양간 쪽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어휴, 시끄러워 죽겠네. 나야, 나.”

낮게,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

할머니가 눈을 찡그리며 외양간 쪽을 향해 외쳤다.

“혹시… 영감인가?”

“나 말고 누가 있어! 애들은 왜 밤중에 마당을 뛰어다녀!”

그림자는 천천히 집 쪽으로 걸어왔다. 달빛 아래 드러난 얼굴은 다름 아닌, 며칠 전에 읍내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갔던 박 할아버지였다.

골목길을 따라 짐을 메고 천천히 걸어가는 시골 노인의 뒷모습

“아버지요?!”

성진이 놀라 소리쳤다. 할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이고, 영감.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이런 밤에 들어와서 애들 혼을 쏙 빼놓을래?”

“아니, 버스가 늦게 와서 그렇지 내가 뭐 어쨌다고.”

할아버지는 외양간에 들렀다가 나오느라, 어깨에 큰 포대를 한 자루 메고 있었다. 안에는 읍내에서 사 온 쌀과 먹을거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 눈에는,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포대를 메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어깨 삐뚤어진 밤손님”

으로 보였다.

준호는 벌써 엉엉 울고 있었다.

“싫어! 포대자루 안 들어갈래!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그는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다시피 했다.

모두가 어리둥절해했다.

“포대자루는 또 뭔 소리야?”

할아버지가 눈을 깜빡였다.

그제야 수진이 상황을 대충 짐작했다. 그녀는 남편을 흘겨보았다.

“여보, 설마, 또 그 밤손님 얘기한 거야?”

성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

“애가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좀, 세게 겁을 줘야겠다 싶어서…”

“그래서 이 꼴이 났잖아요!”

할머니도 한마디 보탰다.

“애들 혼내려다 집안 어른들까지 밤중에 놀라 자빠지게 만들었구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 소동은 이 집 안에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마을은 생각보다 훨씬 좁고, 소문은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옆집 김 씨 아저씨가 삿갓 하나를 대충 쓰고 뛰어왔다.

“무슨 일이오! 도둑 들었소?”

그 뒤를 이어, 장독대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옆집 할머니도 손에 빗자루를 들고 나타났다.

“밤중에 무슨 난리야, 응?”

“저기… 밤손님이…”

아직 눈물을 닦지도 못한 준호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

김 씨 아저씨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손전등을 외양간 쪽으로 비췄다. 할아버지의 큰 그림자가 다시 한 번 벽에 드리워졌다.

“어휴, 박 영감이구먼. 난 또 진짜 귀신이라도 왔나 했네.”

김 씨 아저씨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귀신은 무슨 귀신이야, 나는 버스 막차 타고 온 사람이야.”

할아버지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미 마을 어귀 순이네, 복순이네 집에도 소문은 전해지고 있었다.

“박 집에 밤손님 내려왔대!”

“아이들이 포대자루에 끌려갈 뻔했다나 봐!”

사람들은 제각기 이야기를 덧붙였다. 누군가는 밤손님의 키가 두어 장쯤 됐다 했고, 또 누군가는 눈이 빨간 불처럼 빛났다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다음 날 아침이면 읍내 장터까지 전해질 예정이었다.

한편, 집 안에서는 수습이 한창이었다. 수진은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다시 펴 주며 말했다.

“자, 밤손님 같은 건 없어. 봤지? 아까 그건 할아버지였잖아.”

“근데… 어깨가 삐뚤어졌잖아요.”

주희가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실제로 한쪽 어깨를 살짝 낮게 하고 있었다. 오래전 젊을 때 나무를 하다가 다친 뒤로, 평소에도 짐을 메면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곤 했다.

“그건 원래 그래. 밤손님이 아니라, 그냥 우리 할아버지야.”

수진이 웃으며 설명했지만, 아이들의 눈동자에서는 아직도 완전히 공포가 가시지 않았다.

그때 문 틈으로, 할아버지가 얼굴을 쓱 내밀었다. 그리고 일부러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들, 말 안 들으면 내가 포대자루에 넣어 간다…”

“아버지!”

수진이 반쯤 웃고 반쯤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이들은 또 한 번 이불을 뒤집어썼다.

성진은 옆에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버지, 그러지 마요. 이미 밤손님이니 뭐니 해서 애들 혼을 반 넘게 빼놨어요.”

“밤손님은 무슨. 옛날엔 다 그렇게 키웠어. 울면 잡아간다고 하고.”

할아버지는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성진의 가슴 한편이 묘하게 저릿했다. 그 역시 어릴 적, 어느 겨울밤에 들었던 밤손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그는 진짜로 집 뒤 창고에 숨어 있다가, 눈밭에서 미끄러져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아버지는 웃으면서 ‘겁 줘서 그런 거지, 내가 잡으러 간 건 아니다’라고 했지.”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지금, 그가 똑같은 이야기를 자기 아들에게 하고 있었다.

“난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똑같네.”

이 사실이 그를 조금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에는, 자신도 모르게 되물림되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고.

아이들을 겨우 진정시키고, 집 안의 소란이 잦아들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 벌레 소리는 어느새 옅어지고, 대신 산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성진은 마당으로 나와 홀로 서 있었다. 달빛에 젖은 감나무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마당이 보일 정도의 밝기였다.

그때 김 씨 아저씨가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당 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까, 진짜 놀랐어요.”

성진이 멋쩍게 말했다.

“놀라긴. 나는 솔직히 조금 웃겼는데.”

김 씨 아저씨가 피식 웃었다. “애들이 ‘포대자루 안 들어갈래요!’ 하는데, 나도 어릴 때 똑같이 울었던 기억이 나더라고.”

“형님도요?”

“그럼. 우리 아버지는 ‘도깨비 포수’가 와서 잡아 간다더라.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린데, 그땐 진짜였지.”

두 사람은 한참을 웃다가, 조용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거뒀다.

“근데, 오늘은 진짜 좀 묘하긴 했어요.”

김 씨 아저씨가 슬쩍 말했다.

“뭐가요?”

“내가 올 때 봤거든. 박 영감이 외양간 들어가기 전에, 대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서더라고. 마치 누군가랑 눈 마주친 사람처럼.”

“에이, 형님도 애들 앞에서 너무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성진은 웃으며 넘기려 했다.

“진짜라니까. 나도 멀리서 봐서 잘못 본 건가 싶긴 한데… 그때 대문 옆에, 사람 키만 한 그림자가 하나 더 있었어. 근데 영감이 들어오고 나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 뭐야.”

“그냥 감나무 그림자겠죠.”

“그럴 수도 있고.”

김 씨 아저씨는 마지막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연기는 달빛 속에서 희미한 띠처럼 흩어졌다.

옅은 안개와 어둠 속에서 창문 불빛이 새어 나오는 외딴 시골집 풍경

그날 밤, 모두가 다시 잠자리에 든 뒤에도 성진은 한동안 눈을 감지 못했다. 아이들을 겁주기 위해 한 말이 생각보다 큰 소동을 불러왔고, 자신이 어릴 적 느꼈던 공포를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물려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부턴 그렇게 겁주는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지.”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문득, “그래도 애가 오늘은 진짜 반성하는 것 같긴 한데…” 하는 못 말리는 아버지 특유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튿날 아침, 마을은 온통 박 씨 집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서로를 잡아가며 “밤손님 놀이”를 했고, 어른들은 장에 모여 “어깨 삐뚤어진 밤손님이 진짜 있다더라”는 농담 섞인 소문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이후로 준호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장독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소 꼬리를 잡아당기는 일도, 다락에 몰래 올라가는 일도 사라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머니 물 심부름도 하고, 밤이 되면 스스로 이불을 펴고 제시간에 누워 잠을 청했다.

“밤손님이 그렇게 무서웠던 게야.”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준호는 한 번씩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특히 달이 구름 사이에서 희미하게 비칠 때면, 그는 감나무 옆 그림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느 날 저녁, 준호는 할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아버지, 그날 집에 들어오실 때… 혹시 누가 같이 있었어요?”

“같이? 누가?”

“음… 어깨 삐뚤어진…”

준호가 말을 잇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어버렸다.

“이놈아, 세상에 그런 밤손님이 어디 있어. 사람들 말 못 들으면, 겁줘서 쓰는 말이지.” “진짜 하나도 없어요?” “없다, 없어. 딱 하나 있지.”

“뭔데요?” “네 엄마, 아빠 속 타들어가는 소리. 그게 제일 무서운 밤손님이다.”

할아버지의 말에, 준호는 잠시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성진은 아이들 방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를 들으며, 낮에 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겁으로 키우는 건 오래 못 가. 언젠가 애들도 알게 되면, 그때는 말이 더 안 먹혀.”

저녁 밥상에서,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천천히 밥을 씹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키워야 돼요?”

성진이 물었을 때, 할아버지는 잠시 웃기만 했다.

“그걸 알면 내가 벌써 동네에서 유명해졌겠지.”

성진은 문 밖에서 아이들 방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도, 최소한 내가 어릴 때처럼 아무 설명도 없이 겁만 잔뜩 주면서 키우진 말아야지.”

그는 조심스레 문을 조금 열었다. 아이들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주희는 베개를 끌어안고 있었고, 준호는 이불을 코끝까지 뒤집어쓴 채 입을 살짝 벌리고 잤다.

“준호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불러 보았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가 그날 밤손님 얘기한 거, 너무 겁주려고 한 건 미안하다.”

그는 속으로 말했다.

그 말은 방 안에 울리지도, 아이의 꿈에 닿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 밤 이후로, 성진은 밤손님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장난을 치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렇게 하면, 아빠 마음이 많이 아파. 아빠가 속상한 밤을 보내게 되면, 그게 바로 우리 집 밤손님이야.”

준호는 처음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밤마다 잠들기 전에 슬쩍 아버지 얼굴을 살피곤 했다.

어느 날 밤, 아버지 얼굴이 유난히 피곤해 보이자, 준호는 살금살금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오늘은 밤손님 안 오게, 내가 내일 할머니 심부름 많이 할게요.”

그리고는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잠들었다.

성진은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조금 안심이 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산골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밤이 되면 온갖 이야기를 꺼냈다. 도깨비, 선녀, 호랑이, 그리고 밤손님까지. 하지만 박 씨 집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전해졌다.

“어깨 삐뚤어진 밤손님? 그거, 그냥 할아버지가 쌀 포대 메고 오던 날, 아버지가 겁주다가 생긴 일이야.”

커서 마을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준호였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달이 흐린 밤이면 그는 여전히 마당 끝 감나무 옆 그림자를 본다.

마치 어깨가 살짝 기울어진 누군가가, 조용히 집을 지켜보고 서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 그는 두렵지 않았다. 그 그림자가 어떤 귀신이든, 밤손님이든, 아니면 그냥 자신이 만들어 낸 상상 속 존재든 간에.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오늘은 아빠도, 나도, 서로를 겁주지 않고 잘 지낼 거니까요.”

그 말이 끝나면, 놀랍게도 바람 소리가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았고, 감나무 잎사귀들도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골 어느 집에서 시작된 밤손님 이야기는 조금 덜 무섭고, 조금 더 따뜻한 이야기로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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