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겨울 하늘은 유난히도 건조했다.
사람들은 숨을 몰아쉬고 지하철로 향했다. 종로 어디쯤, 오래된 오피스텔 5층에 사는 한 부부도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남편 민우와 아내 서연. 이들은 매일 카페를 전전하며 노트북 하나로 돈을 벌고 사는, 소위 디지털 노마드였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꾸준한 프로젝트와 소셜미디어 운영으로 월세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도 이제 슬슬 아기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서연은 어느 날, 차 한 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민우는 커피를 홀짝이며 창밖으로 삐져나온 간판 LED를 바라보았다. 서울의 빽빽한 불빛들은 언제나 화려했지만, 그만큼 마음은 늘 또한 빽빽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 근데… 서울에서 그게 가능할까? 월세도 겨우 버티는 판에.”
서연은 이미 며칠 전부터 정보를 뒤지고 있었다.
출산 정책, 육아 지원, 보육원 등록 대기, 아이 백일 사진 가격까지. 전부 검색 결과는 그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서울은 부모가 되기에는 너무 비쌌다.
그리고 어느 날, 서연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지방 출산 장려 정책 확대… 정착 시 최대 1억 원 지원"
그 기사는 지방 소멸 위기를 막기 위한 정부 계획을 다루고 있었다.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여러 군 단위 지자체들이 청년 부부 유입을 위해 주택 보조금과 출산 장려금을 대폭 올린다는 것이었다.
“여기 봐. 만약 우리가 지방으로 가서 아이를 낳으면 지원이 엄청 많대… 주거도 도와주고, 태어난 아이가 크는 동안 보조금도 꽤 나오고.”
서연의 눈빛은 오랜만에 활력을 띠었다.
민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서울을 떠난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주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며칠 동안 두 사람은 밤마다 토론했다.
“인터넷만 되면 우리 일은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까.”
“서울처럼 경쟁도 치열하지 않고, 아이 키우기 더 좋겠지?”
“물론… 정착이 쉽진 않겠지만.”
그러다 결국 결론은 정해졌다.
지방으로 가자.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자.
민우와 서연은 작은 결정을 내리며, 곧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거대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짐을 싸고 서울을 떠나는 날.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피스텔의 좁은 방에, 두 사람은 서운함과 기대를 뒤섞은 감정을 느꼈다.
“우리가 처음 같이 살던 곳이 잖아.”
서연은 벽에 붙여졌던 포스터 자국을 쓱 만졌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믿음이 이별을 덜 아프게 했다.
그들이 선택한 지역은 전남의 한 작은 군이었다.
도시와 가까우면서도 자연이 풍부하고, 청년 인구 유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치는 곳.
거기서 그들은 시골 마을의 빈집을 리모델링한 청년 주거 공간에 입주할 수 있었다.
“와… 공기부터 다르네.”
민우는 차에서 내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먼 산과 노란 들판이 펼쳐진 풍경.
서울과는 확연히 다른 하늘의 높이.
무엇보다 넓은 집.
서울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던 공간이었다.
이웃 주민들은 조심스러운 호기심과 따뜻함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젊은 내외가 왔네. 반갑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을 오가며 인사했다.
하루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아침이면 닭 울음소리에 눈뜨고, 저녁이면 별빛 아래서 산책을 했다.
민우와 서연은 카페 대신 집 책상 앞에서 일했다.
인터넷 속도는 서울보다 조금 느렸지만, 충분했다.
그들은 디지털 노마드였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 같은 소식이 찾아왔다.
두 줄.
서연의 손이 떨렸다.
“민우야… 우리, 아기 생긴 것 같아.”
민우는 눈이 커지더니 곧 서연을 꼭 안았다.
이곳에 내려오며 꿈꾸었던 모든 것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수월하던 일도 임신 중반으로 갈수록 힘들어졌다.
가까운 산부인과는 차로 40분 거리.
고급 산전 프로그램이나 문화센터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때로는 인터넷 상담에 의존할 때도 있었다.
“서울에 있으면 좋았을 텐데…”
서연은 몸이 무거워질수록 외로움도 함께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또한 디지털 노마드 수입은 들쭉날쭉했다.
지방 정책 지원은 출산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정착 보조금도 서류 제출과 심사 기간이 필요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는 여전히 민우의 어깨를 짓눌렀다.
“우리가 너무 큰 꿈을 꾸고 내려온 건 아닐까?”
민우는 새벽에 홀로 노트북을 보며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부녀회 모임에서 자연스레 서연의 임신 소식이 알려졌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서연씨, 이거 좀 챙겨가요. 김이랑 참기름인데 순한 걸로 골랐어.”
“입덧엔 약한 매실차가 좋아요. 이거 내가 담근 건데.”
낯선 곳이라 생각했던 마을은 어느새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서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힘든 길일지라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큰 힘이었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출산일이 다가왔다.
진통이 시작되자 민우는 밤길을 뚫고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할 수 있는 건 서연의 손을 꼭 잡는 것뿐.
“할 수 있어. 우리 곧 아빠, 엄마 되는 거야.”
그리고 새벽 3시.
작고 따뜻한 생명이 세상에 왔다.
아기 이름은 ‘해온’
태양처럼 온기를 가져오는 아이.
민우와 서연은 아이를 바라보며 울었다.
이 모든 여정의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출산 후 지자체는 풍성한 지원을 제공했다.
출산 장려금, 아동수당, 보육 바우처, 주거 보조금…
행정 절차는 번거로웠지만,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은 해온을 마을의 아이처럼 돌봐주었다.
밭일하는 사이 잠깐 맡겨주기도 하고, 병원 갈 때 함께 따라주기도 했다.
도시에선 기대할 수 없었던 사람의 정이 있었다.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
서연은 해온을 품에 안은 채 중얼거렸다.
민우도 자신이 이 마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온라인 판매 프로젝트, 마을 관광 소개 콘텐츠 제작…
그는 점점 이곳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불안도 남아 있었다.
디지털노마드의 수입 구조, 아이의 미래, 교육 환경…
그러나 두 사람은 알았다.
완벽한 미래란 없다.
하지만 함께라면, 충분히 헤쳐갈 수 있다.
어느 고요한 밤.
삼십여 개의 별이 유난히 반짝이는 하늘 아래서, 민우는 말했다.
“서울에서라면 이렇게 하늘을 보지도 못했을 거야.”
서연은 해온의 작은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아이를 위해서 내려왔지만,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
여기서의 삶은 천천히 흐른다.
도시의 화려함은 없지만, 대신 온기와 여유가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라날 해온은
부모가 꿈꾸었던
사람 냄새 나는 삶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세 사람의 삶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미래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건 장소가 아니라, 서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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