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이 내리기 직전의 인천공항 도착장은 유난히 눈부셨다. 천장 가득 매달린 조명은 늦은 시각에도 낮처럼 밝았고, 대형 스크린에서는 연달아 항공편 번호와 도시 이름이 흘러나왔다. 스치듯 지나가는 숫자와 알파벳들 사이로 붉은색 조끼를 입은 가이드가 작은 깃발을 흔들며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공항 한쪽, 입국장 출구 앞에서 민수는 목도리를 더 단단히 조였다. 지방 소도시에서 올라온 그는, 올겨울 들어 벌써 세 번째로 중국 단체 관광객을 맞이하는 관광 안내원이었다. 무비자 제도가 시작된 뒤, 그에게도 일거리가 조금씩 늘었다. 그러나 그가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던 날은 많지 않았다.
사람을 많이 상대할수록, 그는 눈빛을 먼저 보게 되었다. 관광객의 얼굴에 떠 있는 기대와 피로, 그리고 가끔 섞여 있는 불안한 빛을 읽는 것이 그의 일이기도 했다. 그 불안은, 한국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일 때도 있었고, 관광이 아닌 다른 목적을 품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날 밤 민수가 맡게 된 단체는 스무 명 남짓한 소규모 팀이었다. 공항 전광판에는 상하이에서 출발한 항공편 번호가 아직도 반짝이고 있었다. 단체의 맨 앞에는 검은색 패딩을 입은 젊은 남자, 진이 있었다. 여권 사진보다 약간 살이 빠진 얼굴은 긴장과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진은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무비자 입국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는 스마트폰 메모에는 관광지 목록 대신, 한국에서 일하는 사촌이 보내 준 지하철 노선도 캡처와, “일단 들어오기만 해. 나중엔 방법이 생겨.”라는 메시지가 저장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모두 여기 보이시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지방 도시까지 함께 갈 안내원 민수라고 합니다.”
민수가 또렷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진을 포함한 단체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간단한 중국어 인사말 몇 마디가 오가고,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민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뒷모습을 살폈다. 큰 캐리어를 끄는 중년 부부,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 노부부, 그리고 유난히 캐리어가 가벼워 보이는 젊은이 몇 명.
그는 그중에서도 진과 그 일행에게 눈길이 한 번 더 갔다. 여행 가방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작은 배낭, 캐리어 손잡이를 쥔 손의 떨림, 연신 휴대폰을 확인하는 습관. 경험상, 이런 사람들은 관광 사진보다 출국 기한을 더 자주 떠올렸다.
버스 안 히터는 너무 세게 틀어져 있어 창문이 금세 김으로 가득 찼다. 창밖으로는 인천의 도심 불빛이 커다란 얼룩처럼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는 졸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옆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풍경이야말로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관광 버스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버스가 고속도로에 올라 타이어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지자, 몇몇 사람의 눈빛에서는 평범함과는 다른 굳은 결심이 비쳤다.
지방 항구 도시의 겨울 밤 공기는 인천보다 훨씬 차가웠다. 민수가 일하는 도시는, 무비자 제도가 시행된 이후로 갑자기 “중국 단체 관광 특화 도시”라는 이름을 얻었다. 항구 주변에는 중국어 간판이 붙은 식당과 환전소, 기념품 가게가 빠르게 늘어났다.
그 가운데에는 선영의 작은 편의점도 있었다. 선영은 남편과 함께 밤샘 영업을 시작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다. 무비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남편은 “그래도 손님은 늘어나는 거잖아. 힘들어도 버티면 우리한테도 좋은 기회야.” 라며 설득했다.
하지만 선영이 출근해 마주한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손님이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고 떠난 날도 있었고, 상품을 들고 나가려던 손을 붙잡고 경찰을 부른 날도 있었다. 국적은 다양했지만, 언론이 특정 사례를 크게 다루는 날이면 편의점 앞을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차가워졌다.
“요즘 뉴스 못 봤어요? 또 단체로 와서 사고쳤다던데. 편의점 하는 것도 좋지만, 조심 좀 해요. 괜한 사람들까지 따라 들어올지 모른다니까.”
동네 주민의 말은 걱정 섞인 충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선영의 마음에 작은 두려움을 새겨 넣는 말이기도 했다. 그녀는 CCTV 모니터의 밝기를 조금 더 높이고, 계산대 밑에 숨겨둔 비상벨 위치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무비자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뒤, 도시에는 ‘안 좋은 사례’라 불리는 일들이 하나둘씩 쌓였다. 출국하지 않고 사라진 사람들의 기록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행정복지센터의 칠판에는 숫자가 또렷하게 업데이트되었다. 각종 단체 채팅방에서는, 어떤 중국인들이 어느 가게에서 실랑이를 벌였다는 얘기가 자세한 맥락 없이 돌아다녔다.
그 모든 파편들 속에서, 각각의 사람은 제각기 다른 얼굴로 “문제”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어느 날은 불법 체류자, 어느 날은 소란을 피운 취객, 또 어느 날은 열심히 돈을 쓰고 돌아간 손님. 그 차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문제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이 남긴 인상이었다. 몇 건의 불미스러운 일은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바꾸어 버렸고, 사람들 입속에서 “무비자”라는 단어는 점점 “불안”과 묶여 불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편의점 문이 철컥 하고 열렸을 때, 선영은 무의식적으로 CCTV 화면을 먼저 확인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후드티에 패딩을 걸친 젊은 남자 둘이었다. 그는 서툰 발음으로 “라면…? 맥주…”라는 한국어를 꺼내 놓았다.
선영은 자세히 보니, 그들이 며칠 전부터 동네에서 자주 보이던 중국인 단체 중 일부라는 것을 알아챘다. 관광객이 묵는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오래된 여관 근처에서 가끔 눈에 띄던 얼굴들이었다.
“라면은 저쪽, 맥주는 뒤쪽 냉장고에 있어요.”
선영은 최대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로 안내했다. 그러나 손은 자연스럽게 계산대 옆의 비상벨 근처를 스쳤다. 남자들은 조용히 라면과 맥주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왔다. 선영은 계산을 하며, 슬쩍 그들의 손목과 얼굴을 살폈다. 긴장한 기색은 없었지만, 눈 밑에는 피로가 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여기서… 오래… 있어요?”
젊은 남자들 중 한 명이 더듬더듬 한국어로 물었다. 의외의 질문에 선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음… 저는 여기서 오래 살았죠. 당신들은요? 여행… 언제까지?”
대답을 기다리던 사이, 진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두 친구 사이에 끼어 서서 물병 하나를 들고 계산대 위에 내려놓았다. 눈이 마주치자 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틀… 더.” “아마도.” “모르겠어요.”
세 사람의 답은 제각각이었다. 그중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혹은 세 사람 모두가 어느 정도의 거짓과 진실을 섞어 말하는 것인지 선영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준비된 멘트처럼 말했다.
“기한 지켜서, 꼭 돌아가세요. 그래야 다음에 또 올 수 있어요.”
진은 그 말에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비친 선영의 얼굴은 낯선 나라의 부모와도 같은 표정으로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작은 숨을 내쉬고, 한국어 대신 중국어로 대답했다.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선영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목소리에 담긴 무게만은 어렴풋이 느꼈다. 그 무게는, 어쩌면 국적과 상관없이 이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과 닮아 있는지도 몰랐다.
며칠 뒤, 행정복지센터에서 회의가 열렸다. 무비자 제도 시행 이후, 단체 관광객 일부가 예정된 일정에서 이탈하는 일이 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경찰서에서는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사건 몇 건을 조심스레 언급했고, 관광과를 맡고 있는 공무원들은 통계를 꺼내 들고 설명을 이어갔다.
회의실 공기를 가르는 것은 숫자와 그래프, 그리고 “사례”라는 단어였다. 거기에는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없었다. 불법 체류자 A, 민원인 B, 점주 C. 사람을 표시하는 알파벳은 많았지만, 그 중 누구의 이야기도 온전히 들리는 일은 없었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이야기들은 점점 단순해졌다. “무비자를 줄이자”와 “도시 경제가 죽는다” 사이에서 서로의 주장은 날카로워졌다. 그 사이에서, 호텔 청소를 도우며 밤마다 붉은 눈으로 침대를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사정이나, 빚을 갚기 위해 어떻게든 한국에 남고 싶어 하는 어느 중국 청년의 절박함, 그리고 그들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동네 어르신들의 기억은 어느 자리에도 제대로 놓이지 못했다.
도시가 기억하는 것은 대개 “사건”이다. 그러나 사람을 바꾸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설명과 말들, 그리고 설명에서 빠져 버린 이름 없는 사람들의 자리다.
진이 머물던 여관 방은 생각보다 좁았다. 벽지는 군데군데 뜯겨 있었고, 창문 틈으로는 차가운 공기가 새어 들어왔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스마트폰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국에 먼저 와 있던 사촌에게서 온 메시지가 읽지 않은 상태로 떠 있었다.
“여기서 버티면, 언젠간 괜찮아진다.” “불법이라도 일은 있다.” “두려우면 그냥 돌아가.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그 문장들이 한 줄씩 눈앞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가 서류를 준비하고, 비행기를 타고,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새로운 땅에 내려서기까지 들인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숫자 하나였지만, 그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틀어 버린 선택의 기록이었다.
출국 날짜 전날 밤, 진은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선영은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진의 눈 밑은 더 깊게 파여 있었지만, 표정은 오히려 조금 가벼워 보였다.
“내일… 돌아가요.” “잘 결정했네요.” “언젠가… 다시 올 수도 있어요?”
선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기한 지키고 돌아가는 사람이면, 언제든 또 올 수 있어요. 관광이든, 공부든, 일이든. 다만, 그때는 서로 조금 덜 불안했으면 좋겠네요.”
진은 그 말을 천천히 머릿속에서 되뇌었다. 그리고 한국어로 짧게 말했다.
“저도요. 여기 사람들도… 덜 무서워하고, 저도… 덜 두려웠으면 좋겠어요.”
몇 주 뒤, 행정복지센터 칠판에 쓰인 숫자는 다시 한 번 바뀌었다. 불법 체류 의심 인원 몇 명이 추가되었고, 그 옆에는 단체 관광객 소비 지출 통계가 보기 좋게 정리되어 붙었다. 작은 편의점 앞에는 여전히 중국어 간판이 반짝였고,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주 작은 변화도 있었다. 편의점 벽 한쪽에는, 선영이 손 글씨로 적어 붙인 안내문이 걸렸다.
“이 가게는 어떤 국적이든, 기한을 지켜 머물다 돌아가는 모든 손님을 환영합니다. 서로의 언어가 서툴더라도, 서로의 마음까지 서툴 필요는 없습니다.”
그 문장을 읽고 지나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문구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끔, 늦은 밤 편의점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온 젊은 여행자가 번역 앱을 켜고 그 문장을 천천히 읽어 내려갈 때, 선영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무비자 제도는 계속해서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을 것이었다. 더 엄격해져야 한다는 목소리와, 더 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 도시의 골목과 회의실, 그리고 뉴스 화면에서 부딪힐 것이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몇 개의 “안 좋은 사례”를 앞세울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했다. 국경을 넘는 발걸음도, 그 발걸음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모두 각자의 사정과 상처, 그리고 희망을 품고 있었다.
언젠가 이 도시에 또 다른 겨울이 찾아올 때, 인천공항 도착장 불빛 아래 서 있는 새로운 얼굴들이 조금은 덜 의심받고, 조금은 덜 두려워하며, 서로를 향해 인사를 건넬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때쯤이면, 편의점 계산대 위에 놓인 비상벨 대신 조금은 낡은 환영 안내문이, 이 도시의 밤을 지키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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