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이름은 주연이었다.
늘 북적이는 도시 속 삶이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점점 지쳐갔다.
아침 7시 지하철 안의 숨 막히는 인파,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하루, 상사의 눈치를 보며 고쳐 쓰는 기한 임박 보고서. 모두가 버티고 사는 세상이라 했지만,
버티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존재 이유가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도시에 울려 퍼지는 자동차 경적 소리보다, 가슴 속 텅 빈 울림이 더 컸다.
회사 생활 3년 차
그는 문득, 자신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는 다리 하나가 놓여 있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그는 같은 날을 복사한 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저녁, 우연히 TV에서 스마트농업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자동 제어 시스템이 온실 내부 온도와 습도를 관리하고, 수경재배 기술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정하게 작물이 자라는 모습.
그 순간, 주연의 눈빛이 반짝였다.
‘저건… 농업이지만 기술이다.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을지 몰라.’
생각은 금방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그날 잠을 설쳤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만큼이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심장을 뛰게 했다. 결국 그는 결심했다.
직장을 떠나 새로운 형태의 농업에 뛰어들겠다고.
부모님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요즘 세상에 안정된 직장을 놓고 농사를 짓겠다니 미친 소리로 들릴 법했다.
“뭐라도 배워보고, 몇 년 뒤에도 여전히 하고 싶으면 그때 해도 되잖아.”
하지만 주연은 말했다.
“지금 아니면… 난 평생 못 할 것 같아요.”
그는 결국 사직서를 내고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했다. 두려웠지만 가슴 속 한 곳은 확실하게 뜨거웠다.
시골은 도시와 전혀 다른 속도로 흘렀다.
전남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바람에 스치는 갈대 소리가 먼저 그를 맞이했다.
멀리 보이는 산맥,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 익숙하지 않은 흙 냄새. 불안도 있었지만, 묘하게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스마트팜 장비는 비쌌고, 기반 지식도 부족했다.
온실을 직접 설계하고 장비를 설치하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센서 하나가 오류를 일으키면 온실 전체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수경재배액 농도가 맞지 않아 잎이 시드는 날들도 많았다. 초반 수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시골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도시서 왔다고 농사가 우습게 보이나 보지.”
“요즘 젊은 사람들 금방 포기해.”
주연은 자신을 향한 의심을 풀어내기 위해 더 부지런해졌다.
해 뜨기 전에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기술에 기대기만 하지 않으려, 전통 농사의 기초부터 배웠다. 어르신들에게 다가가 질문도 하고 인사도 하며 마음을 열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어느 순간 어르신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젊은이가 열심히 하네. 그거 기계가 다 알아서 해주는 건 줄 알았더니.”
몇 개월 후,
그의 딸기 스마트팜에서 첫 수확이 이뤄졌다. 예상보다 적은 양이었지만, 그 작물에는 그의 땀과 시간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주연은 직접 마을 장터로 나갔다. 사람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스마트팜 딸기를 바라봤다.
“이게 흙 없이 자라는 딸기라고?”
한 아주머니가 한 입 베어 물더니 말했다.
“아이고, 이거 진짜 달다.”
그 말 한마디에 주연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드디어 인정받은 것만 같았다.
농사가 조금씩 자리를 잡자 새로운 기회도 찾아왔다.
SNS에서 그의 농장 스토리가 퍼지며 도시 고객들의 주문이 늘었다.
청년이 만든 신선한 농산물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 급식 납품 문의, 지역 로컬푸드 매장 입점 제안, 체험 농장 프로그램 요청까지 차례로 이어졌다.
주연은 더 큰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온실 농산물 생산 자동화 고도화, AI 분석 기반 수요 예측, 온라인 정기 구독 프로그램.
작은 시골 농장에서 첨단 기술을 통해 새로운 농업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농업기술센터의 전문가, 농촌 지원 공무원, 마을 청년들과 함께 고민하고 협력했다. 지역도 그의 의지를 응원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그는 어느새 마을을 대표하는 청년 농업인이 되었다.
마을에 놀러 온 아이들은 말했다.
“삼촌, 농사꾼이 컴퓨터도 해요?”
“그럼! 농사도 기술이야.”
주연은 환하게 웃었다.
가끔 햇살 좋은 오후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생각한다.
도시에서의 자신은 늘 누군가를 따라가느라 정신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록 작은 땅일지라도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주연은 혼잣말을 했다.
“도망친 게 아니라… 나를 찾으러 온 거였구나.”
밤이면 온실의 수많은 LED 조명이 은은하게 빛난다.
그 빛은 주연이 그려 온 삶의 새로운 장이자,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스마트팜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오늘도, 내일도, 뿌리 내릴 미래를 위해 걸어가겠다고.
흙은 그의 손에 익숙해졌고, 삶은 그의 의지를 닮아 강해졌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도시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시골이 그의 삶이고, 땅이 그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렇게 MZ 청년 주연의 농촌 정착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 걸음씩, 그러나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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